巨與, 국정독주를 ‘국민과의 협치’로 포장… 승자독식 정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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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代 국회와 ‘협치’

협치의 핵심은 ‘권력 공유’인데 野 제치고 국민에게 직접 호소… 거대의석 힘 믿고 야당 압박 ‘다수의 횡포’

‘조건 없는 협력’ 요구에 野 ‘대안 없는 저항’으로 갈등 일상화… 협상·양보 통한 ‘호혜적 교환’ 이뤄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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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가 최근 청와대에서 만나 한목소리로 ‘협치’를 합창했다. 사실 지난 20대 국회(2016년 5월 30일∼2020년 5월 29일)는 협치 측면에서도 역대 최악이었다. 21대에서는 달라질까. 협치는 어떻게 작동되나.

협치는 한마디로 여와 야가 법안·인사·정책·예산 등을 놓고 협상과 양보를 통해 호혜적으로 권력을 공유하며 국정과제를 수행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21대 국회처럼 집권당이 절대 의석에 수렴할수록 협치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양당제의 대결 문화에 길든 한국적 상황에서 여당은 의석수가 늘어나면 ‘ 협치 는 서로 주고받는 것’이라는 인식 대신 ‘야당이 여당의 국정 운영에 협력하는 것’이라는 논리에 빠지게 된다. 여당은 승자독식에 따른 ‘다수의 횡포’를 정당화하기 위해 국민과 여론에 직접 호소하고, 야당의 비협력적 태도를 ‘발목 잡기’라 규정하며, 자신들의 국정 독주를 ‘국민과의 협치’라는 논리로 포장한다. 이에 야당이 대안 없는 저항으로 일관하면서 정국이 경색되고 갈등과 분열이 일상화한다. 21대 국회도 여당이 입으로는 협치를 떠들지만, 실은 거여(巨與)의 힘을 믿고 국정 독주를 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협치의 이론적 배경

정치적 의미의 협치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아직 없다. 다만 이를 설명하기 위해 거버넌스이론, 합의제이론, 교환이론 등을 살펴볼 수 있다. 해외 연구자들의 통계적 분석과 사례연구 등을 종합해 보면, 한 국가에서 소수의 목소리가 배제되고 대표성의 위기를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 다수제 ’에서 ‘ 합의제 ’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겉으론 민주적 조직이지만, 안으론 민주적 원칙을 이행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민주주의 적자’를 경험하게 된다.

미국에서 지난 수십 년간의 중요한 법률 제·개정 과정을 분석한 일련의 연구들에 따르면 역대 미 대통령들은 법안에 서명하기 전 반드시 의회와 타협을 했고, 상당한 양보를 수용했으며, 그 과정에서 원하는 대부분을 성취했다. 내각제 중심의 서유럽이든 대통령제의 미국이든 선진국에서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국정 운영의 주요한 특징을 꼽는다면 ‘정당 간 권한의 공유’, 그리고 ‘행정부와 입법부 사이의 권력균형’이다. 이때 협치는 오리어리(Brendan O’Leary)가 말한 대로 ‘권력공유’와 동의어가 된다.

초기 교환이론 학자들은 사람 사이의 ‘호혜적 교환’이 문화를 형성한다고 봤는데, 오늘날의 교환이론은 사회적·정치적 상호작용에서도 적용된다. 개인이나 집단은 상호 주고받기의 기대감 때문에 ‘보상과 대가의 교환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요컨대 오늘날 한국 정치에서의 협치는 청와대와 여야 국정 행위자들이 합의제의 철학과 권력공유의 정신을 바탕으로 호혜적 교환을 구현함으로써 작동된다.

◇문 정권의 협치관

문재인 대통령과 집권여당은 출범 때부터 협치를 이해하는 방식이 달랐던 것 같다. 문 대통령은 취임 초 “과거처럼 여야가 주고받기로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협치가 필요하다”고 피력했다(2017년 7월 19일 여야 대표 청와대 초청 회동 발언). 집권세력의 머릿속에는 촛불민심에 따라 탄생한 현 정권은 선이고 정의고 진리며, 보수 야당은 악이고 불의고 거짓이라는 이분법이 깔려 있다. 여당의 국정 운영에 야당이 협력해주는 게 협치라는 생각이 자리한 건 이런 신념 때문이다.

이 같은 협치관은 절대 의석을 차지한 21대 국회 환경에서는 더욱 커졌다. 여당 지도부가 기회 있을 때마다 “국민과 협치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이런 흐름 위에 있다. 이는 브래디(Donald Brady)가 지적한 대로 집권세력이 국정 타개 전략 가운데 ‘정치엘리트 집단 간(within the Beltway) 교섭’이 아닌 ‘여론에 호소하기(appeal to public opinion)’를 택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청와대와 여당은 야당이 아닌 국민을 직접 상대해 정치하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여기서 국회 우회, 이른바 ‘대의제 패싱’ 문제가 생긴다. 의회 내 절대 의석을 차지한 다수당의 이런 인식은 승자독식 논란을 만든다.

◇21대 정치지형과 협치

집권당의 ‘너무 많은’ 의석은 협치를 실패로 안내할 가능성이 크다. 전체 의석의 5분의 3에 가까운 의석을 가진 강력한 여당이 존재하는 정치 지형에서 집권세력이 협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4·15총선 결과 범여권은 더불어민주당 177석 포함 188석,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은 103석을 얻었다. 여권이 법안·인사·정책·예산 같은 국정과제를 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야당에 손을 내밀어야 할 절박감이 없는 것이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집권세력에 협치의 유인력과 동기가 없어 (협치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주당은 이견 하나라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자세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표결 때 소신 기권했던 금태섭 전 의원을 최근 징계한 데서 보듯, 민주당이 전체주의적 규율을 강요하는 한 당내 민주주의도 없고, 여야 협치도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민주당은 국회 개원 협상에도 야당과의 협상에 적극적이지 않다. 비록 ‘으름장’이라 하더라도 18개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를 싹쓸이하겠다는 태도는 권위주의 정권의 그것을 빼닮았다.

적어도 1987년 민주화 이후 원 구성 때 의석수 배분에 따른 협치는 하나의 불문율이었다. 지금의 제1야당인 보수 정당이 집권했을 때에도 의회 내 승자독식은 없었다. 10여 년 전인 18대 국회 때 의석 200석에 가까웠던 범여권이 81석에 불과한 민주당과 타협해 법사위원장을 포함, 7개 상임위원장을 내줬다.

◇여의 논리와 야의 대응

여당은 의회 내 승자독식과 국정 독주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이를 협치로 포장할 필요성이 생긴다. 그 논리가 바로 ‘국민과의 협치’다. 이는 집권세력이 국회를 우회해 여론에 직접 호소하면서 야당의 비협조를 ‘발목 잡기’라 압박하고, 여당의 일방독주를 ‘일하는 국회 만들기’로 포장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에 대한 야당의 대응엔 ‘순응’ ‘저항’ ‘사안별 협력’ ‘대안 제시’ 등이 있다. ‘순응’은 양당제 전통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는 야당의 무기력감을 드러내 입지와 존재감을 줄이고 지지세력의 이반을 가져오므로 불가능한 선택지다. ‘사안별 협력’은 코로나19 같은 국난이나 전쟁 등 특별한 상황이 아닌 한 한계가 뚜렷하다. ‘대안 없는 저항’은 국민의 비호감도를 높일 것이다. 그렇다면 야당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책은 거부할 수 없는 ‘대안 제시’와 이를 무기로 한 ‘저항’이다. 이에 대한 국민적 호응이 커지면 여당도 무조건 협치를 거부하기는 어려워진다.

민주주의 연구의 권위자인 레이파르트(Arend Lijphart)에 따르면 승자독식은 대립과 갈등의 정치를 불러일으키는 잠재력을 갖는다. 협치 불발의 일차적 책임은 대부분의 권력을 쥐고도 나누려 하지 않는 청와대와 여당에 있다. 전문가들은 대통령과 여당이 야당과의 호혜적 교환을 통해 권력을 공유하며 협치를 일궈내는 것이 다수의 횡포를 막고 국정을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길이라고 입을 모은다.

전임기자·행정학박사

■ 세줄 요약

협치의 이론적 배경 : 협치론은 거버넌스이론, 합의제이론, 교환이론 등을 배경으로 함. 협치의 메커니즘은 ‘보상과 대가의 호혜적 교환’임. 즉 협치란 여야가 협상과 양보로 권력을 공유하며 국정과제를 수행하는 행위 또는 체제라고 할 수 있음.

여당의 협치관 : 여당은 ‘촛불민심’으로 탄생한 정부의 국정 운영에 야당이 조건 없이 협력하는 것을 협치라 생각함. 집권세력은 ‘여는 선(善), 야는 악(惡)’이라는 이분법을 갖고 있음. 거여(巨與)가 된 집권세력은 협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함.

21대 국회 협치 전망 : 여당은 승자독식과 국정 독주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이를 ‘국민과의 협치’로 포장함. 하지만 이는 ‘다수의 횡포’와 함께 야당의 저항을 부르고 대결 정치를 초래. 21대 국회도 그런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음.

■ 용어 설명

‘협치’란 일반적으로는 행정학의 ‘거버넌스(governance)’를 번역한 것. 정치권에서 회자하는 협치의 사전적 정의는 아직 없음. 다만 맥락상 여야의 ‘협의·타협의 정치’ ‘권력 공유’ 등 개념을 동반함.

‘다수제’와 ‘합의제’는 민주주의의 두 유형임. 다수제는 다수결에 의존하는 형태인데, 종종 특정 정파에 의한 ‘다수의 횡포’를 부름. 합의제는 타협과 양보와 권한 공유로 정당 간 협력 체제를 만드는 것.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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