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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진(1921∼2001)

언제나 내 편이었던 보고 싶은 나의 할머니. 할머니는 슬하에 6남매를 낳으셨고 2명의 손자와 11명의 손녀를 두셨습니다. 저는 할머니의 막내 손녀였습니다. 그래서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었나 봅니다. 저는 사촌 언니가 많았기에 할머니는 제가 언니들한테 기가 눌릴까 봐 걱정하셨습니다. 명절날에는 항상 저를 옆에 두고 식사하셨고 저부터 용돈을 주셨습니다. 저한테 잔심부름 시켰던 기억은 없습니다. 항상 오빠나 언니들한테 심부름을 시키신 기억이 납니다.

할머니의 고향은 함경북도입니다. 할머니께서 고향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는데 어렸을 때 들었던 터라 정확한 지명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할머니는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막내 손녀인 저를 살뜰히 챙겨주셨나 봅니다. 또 가자미식해를 좋아하셨고 잘 담그셨다는 사실이 기억납니다.

할머니께서는 이북에서 할아버지를 만나 결혼을 했고 1·4후퇴 때 내려와 서울 동작구 노량진 일대에 터를 잡았습니다. 그래서 큰아버지와 고모들은 함경북도 일대에서 태어났지만 저희 일가족의 본적은 노량진동입니다. 몇 년 전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을 때 노량진에서 공부하며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공부하느라 힘들고 지친 손녀에게 할머니는 어떤 말을 건네셨을지를 상상하며 힘든 수험 생활을 버텼습니다. 그러나 등용문을 넘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저는 전공을 살려 다른 직업을 얻었습니다. 한때는 낙방했다는 슬픔에 잠겨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할머니만큼은 제가 어떤 일을 하든지 저를 무척 자랑스러워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할머니는 제가 태어날 무렵인 1992년 봄 교통사고를 당하셨습니다. 자세한 사고 경위는 차마 여쭤보지 못했고, 큰 사고가 아닌 것만 알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교통사고로 거동이 불편해졌습니다. 묵주와 성가집을 챙겨서 항상 할머니를 모시고 성당을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신자들이 많이 몰리는 부활절에는 할머니보다 먼저 성당에 가서 앞자리를 맡았습니다. 할머니는 사고 직후 시장에서 하던 장사를 그만두셨고 가족들을 위해 기도만 하셨습니다. 우리 가족 중에 다시는 다치는 사람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셨습니다. 할머니의 기도 덕분인지 남은 가족들은 건강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습니다. 잔병으로 인한 고생 없이 편안히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당시에 저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무척 슬프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제 인생의 든든한 버팀목이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어린 나이었지만 제 인생에서 모든 것을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주는 사람은 할머니밖에 없었으니까요. 사랑하고 너무나 보고 싶은 할머니의 세심한 배려 덕분에 저는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손녀가 됐습니다. 먼 훗날 할머니께 받은 배려를 베풀 줄 아는 그런 할머니가 저도 되고 싶습니다.

손녀 전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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