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태영 前 국방부 장관

기강 무너지고 정치에 휘둘려
與 총선 압승으로 더 악화 우려
전쟁에 대비해야 평화도 가능

북한·중국·러시아 군사력 증강
스위스 ‘무장 중립’ 전통 교훈
軍지휘부 ‘안보 忠言’ 나서야

최근 군(軍) 관련 보도를 보면서 가슴을 친다. 민간인이 경계 철조망을 넘어 군사시설 안을 배회하고, 경계병들이 휴대전화로 술과 안주를 배달시키며, 장병들이 영내 대기 지침을 어기고 유흥주점에 갔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됐다고 한다. 우리 감시초소(GP)에 북한의 총격이 가해졌는데 GP의 원격사격 체계가 작동하지 않아 32분이 지나서야 수동사격으로 대응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해·공군이 군산 앞바다에서 실시한 합동 방어훈련에 대해 북한이 비난하자 청와대 안보실이 국방부와 합참, 육·해·공군의 관계자들을 불러 경위를 추궁했다고 한다. 또, 며칠 전 장군 인사에서 직위 진급으로 육군 소장이 돼 국방부 대북정책관 직을 수행한 사람을 육군 중장으로 진급시켜 수도방위사령관에 임명했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적극 협력한 것이 파격적 인사의 동기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전투준비태세가 미흡하고 기강이 무너진 군의 모든 활동이 청와대의 정치적 판단에 의해 주도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군의 정상적 운영이나 활동이 위축될 위험성에 대해 많은 국민이 걱정하고 국방 및 안보 태세를 불안해한다.

왜 우리의 안보 태세가 이렇게 무너지고 있는가? 현 정부는 전쟁의 위험을 배제한다는 이유로 북한과의 화해·협력을 추구하면서 김정은과 북한 군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군사 능력 강화와 연관된 사안을 가능한 한 최소화한다. 또, 장병들의 복지를 대폭 확대한 여파로 군대의 기강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그런데도 4·15 총선에서 압승해 국회를 장악하게 된 현 정권은 이런 행보에 더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국민은 감성적이어서 ‘평화’ ‘통일’에 현혹되는 경향이 있다. 상당수는 “아무리 나쁜 평화라도 전쟁보다 낫다”고 주장한다. 이춘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지적했듯이 평화와 전쟁은 대등한 게 아니다. 평화는 ‘목적’이고 전쟁은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따라서 ‘평화’를 위해서는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시달리고 있지만, 주변 상황은 더욱 엄중하다. 세계 2위의 경제 대국 중국은 지상군 위주의 군사력을 벗어나 해·공군 위주의 과학적 군사력으로 바꿔 힘의 투사가 가능한 공격형으로 발전시켰다. 중국의 해군력은 우리 해군의 6배 규모이고, 공군력은 우리 공군의 3배 이상이다. 중국은 이러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남중국해의 내해화(內海化)와 함께 제1 도련선, 제2 도련선으로 서태평양지역으로 세력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러시아도 세계 2위의 군사력을 과시한다. 일각에서는 일본의 군사 대국화를 최대 위협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반일 정서에 몰입한 세력들의 부정확한 현실 인식의 결과다.

영세중립국 스위스의 국민은 중립이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인식으로 자결과 무장 중립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상비군 규모는 작지만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20세가 되면 18∼21주간의 신병교육을 받고, 26세까지는 매년 19일씩 소집교육을 받으며, 이후에는 예비군에 편성돼 국가 위기 시 48시간 안에 동원되는 체제다. 국경으로부터 국내로 진입하는 경로상의 모든 교량과 터널에는 필요할 때 붕괴시킬 수 있는 폭파 장치가 준비돼 있다. 이에 비해 한국군은 신병교육이 5∼8주에 불과하며 예비군에 편성되면 연 1회 2박 3일간의 동원훈련만 받는다. 9·19 남북 군사합의에 따라 비무장지대(DMZ) 내 GP 10곳이 파괴됐고, 남·북 간 통로도 개설돼 있다.

현 정권이 정책 기조를 고수하더라도 국가 안보를 책임진 군의 주요 직책 수행자는 2가지 임무에 모든 걸 걸어야 한다. 우선, 자신이 지휘하는 군사력을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든 전투에 투입할 수 있도록 정예화해야 한다. 군사력은 갑자기 확보 가능한 게 아니다. 장기간의 노력에 의해서만 만들어진다. 군의 기강도 교육과 엄격한 규율이 적용되는 집단생활을 통해 형성되는 것으로 긴 기간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국가 방위의 전문가로서 군과 국가 안보의 현실을 정확히 모르는 국민과 정치권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국민과 정치권도 일시적인 인기와 편안함에 현혹되지 말고 국가 방위 전문가의 충언(忠言)에 귀를 기울이며 전쟁 대비에 만전을 기해 진정한 평화를 보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