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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도량형(度量衡)은 길이·부피·무게 등을 재는 단위 법을 말한다. 도량형이 표준화되어 있지 않으면 계산은 불가능하고 거래는 중지된다. 더 나아가 경제활동도 불가능해진다. 도량형은 과학이자 신뢰를 가능하게 하는 문화 척도다.

지난 7일 통계청은 ‘2019년 연간 지출 가계동향조사’에서 지난해 전국 가구의 월평균 소비지출이 전년 대비 8만1000원 줄어든 245만7000원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전체 가구의 소비지출은 2년 연속 감소해 2012년(245만7000원) 수준으로 낮아졌다. 통계청은 “지출 조사 표본을 7200가구로 늘렸기 때문에 과거와 직접 비교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통계청의 ‘과거와의 비교 불가’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2018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 소득 하위 20%의 소득이 역대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지자 여당에서 통계 개편을 요구했고, 같은 해 10월 황수경 통계청장이 교체됐다. 비가 오지 않자 기상청장을 경질한 셈이다. 후임 강신욱 현 청장은 지출 조사 표본을 7200가구로 늘리고 60대 이상의 비중을 낮추는 쪽으로 통계 표본을 다시 짰다. 그런데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이 감소했다. ‘시계열적 분석 불가’ 해석은 감독이 연기(演技)에 대해 ‘NG’를 선언한 것과 다를 바 없다. 마음에 들 때까지 연기를 반복해야 할 판이다.

강 청장의 ‘전년과 비교하지 말라’는 주문은 처음이 아니다. 2019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 형태별 부가조사 결과’에서도 비정규직 근로자 수가 전년보다 87만 명 늘어난 것으로 나오자 “설문 문항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통계는 현실이고 현실은 정책의 결과다. 정책이 잘못돼서 빚어진 정책 실패를 직시하지 않고 통계를 고문한 격이다. 2018년 1분기에 하위 20% 소득계층의 소득이 크게 줄고 2019년 8월에 비정규직 비중이 많이 커진 것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낳은 역작용에서 비롯된 것이다. 최저임금이 30% 가까이 급등하면서 가장 피해를 본 계층은 ‘저학력·저숙련·고령 노동자’이다. 따라서 이들이 주로 속해 있는 하위 20% 소득계층의 소득이 가장 크게 하락한 것은 당연하다. 또한,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가 초래한 고용절벽에 놀란 정부가 세금 일자리를 만들어 고용절벽을 가리려 했기 때문에 비정규직이 많이 늘어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일 근로자의날에 “노동자는 이제 우리 사회의 주류”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오랜 노력으로 최저임금 인상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주 52시간 근로제가 이뤄졌고 우리 사회는 양극화를 극복해 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문제의 근원은 대통령과 주변 참모의 잘못된 정책 인식이다. 생산성 향상이 수반되지 않은 정치권의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이 빚은 부작용을 아직도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생산성이 향상돼야 임금이 오를 수 있다. 최저임금을 올린다고 소득이 증가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힘으로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연평균 근로시간이 높은 것은 역설적으로 비정규직(계약직)의 비중이 작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은 악(惡)이 아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제고돼야 비정규직의 비중이 줄어들 수 있다.

통계는 도량형과 같다. 정책 결과인 현실을 왜곡하는 데 통계가 수단이 돼선 안 된다. 통계는 실상을 있는 그대로 알리는 귀중한 정보자산이다. ‘통계 불신’은 정책 불신이란 부메랑으로 되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