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탈원전 정책 폐기하라” 한국수력원자력과 두산중공업 소속 노조원들이 지난달 7일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앞에서 정부가 중단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와 두산중공업 구조조정 해결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상반기 착공 1-2단계 사업
모듈 전량 中 JA솔라 제품
98㎿ 해남발전소도 中점령

국내업체 가격경쟁력 밀려
OCI 사업철수-넥솔론 파산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탈석탄’ 정책 기조를 유지하기로 한 가운데 국내 최초로 민관 합동으로 구축하는 ‘철원 두루미 태양광 발전소’에도 중국산 태양광 모듈이 대거 설치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가 설비만 늘리는 보급 중심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펼치면서 저가 공세를 앞세운 중국산에 국내 태양광 시장이 빠르게 잠식당하고 있다. 국내 태양광 산업 육성 대책이 도외시된 와중에 정부 지원이 집중되는 태양광 시장에서 중국 기업들이 정책 수혜를 독식하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국내 태양광 산업의 ‘밸류체인’(가치사슬)이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도 팽배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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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태양광 발전소 핵심부품 장악한 중국산 =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강원 철원군 갈말읍 문혜리에 짓고 있는 철원 두루미 태양광 발전소의 1-2단계 사업에 쓰이는 태양광 모듈이 100% 중국산인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상반기 착공되는 15㎿(메가와트)급 이번 사업에서는 중국 태양광 제조업체 ‘JA솔라’가 태양광 모듈을 전량 납품한다. 앞서 올 초 준공한 15㎿급 1-1단계 사업에서도 30% 규모인 5㎿의 태양광 모듈을 중국 태양광 제조업체인 ‘트리나솔라’가 만들었다. 태양광 모듈은 발전소 주요 기자재 단가에서 적게는 40% 많게는 60%까지 차지하는 핵심 부품이다.

태양광 모듈은 태양광을 전기로 바꿔주는 장치로 수십, 수백 장을 연결해 설치하면 태양광 발전소가 된다.

철원 두루미 태양광 발전소는 국내 최초로 민관이 협력해 진행한 주민참여형 태양광 발전사업이다. 발전 용량은 200㎿로 국내 최대 규모이며 여러 단계에 걸쳐 건설될 예정이다. 200㎿는 철원군 전체가 1년간 사용하는 전력량의 50% 이상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최초 주민참여형 태양광 사업이란 상징성을 지닌 발전소의 핵심 기자재마저 중국산에 점령당했다”며 “무늬만 한국산 태양광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최근 중국산 부품은 국내 대형 태양광 발전소를 빠른 속도로 잠식하고 있다. 지난 3월 말 전남 해남에서 상업 운전에 착수한 98㎿급 ‘솔라시도 태양광단지’에 설치된 태양전지(셀)도 모두 중국산이다. 올 연말 준공될 예정인 93㎿급 전남 영암 태양광 발전소에도 중국산 태양광 모듈과 인버터(직류 전력을 교류로 변환해주는 기기)가 쓰이고 있다. 각각 중국 태양광 업체인 ‘진코솔라’와 ‘선그로우’가 만든 제품이다.

◇지난해 2500억 원 매출 독식, 중국기업 놀이터=이는 정부가 태양광 설비를 급격하게 늘리자 저가 제품을 앞세운 중국 기업들이 별다른 장벽 없이 국내 시장을 장악한 데서 비롯됐다. 국내 대기업들은 정부 세제 지원을 받지 못하는 데다, 가격 경쟁력도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업체를 따라갈 수 없는 상황이다. 에너지 업계는 지난해 중국 업체들이 국내 시장에서 벌어들인 매출만 2500억 원을 웃돌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시장을 잠식하는 속도도 탄력을 받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PV인포링크와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국내 태양광 시장에서 중국 업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14.5%에서 2019년 22.4%로 늘었다. 중국 주요 태양광모듈 업체 국내 판매량도 2018년 342㎿에서 2019년 700㎿로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반면, 중국과의 치킨게임에서 밀린 국내 태양광 산업은 존폐기로에 서 있다. ‘폴리실리콘→잉곳→웨이퍼→셀→태양광 모듈’로 이뤄진 밸류체인은 이미 붕괴했다. 태양광 기초 소재 분야인 폴리실리콘을 만드는 국내 기업들은 중국산에 밀려 모두 사업을 접었다. 지난 2월 OCI가 국내 공장 문을 닫았고, 한화솔루션도 국내 생산을 접었다. 중간재인 잉곳·웨이퍼를 만드는 넥솔론이 지난 2017년 파산하면서 국내 유일한 제조사가 된 웅진에너지도 법정 관리 상태에서 매각 절차를 밟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태양광 생태계 육성 정책이 병행되지 않으면서 국내 제조업체들이 중국에 밀려 파산 위기에 처했다”며 “국내 기업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정책적 인센티브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권도경 기자 kw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