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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민트’로 핵심 측근 동향 파악… ‘金 행보’ 짐작
‘테킨트’로 통신감청…‘金 이상없음’ 결정적 판단

美 정찰기 8종 50여 차례 전개
韓·美 감시자산 총동원해 추적
양국 ‘정보공조체계’ 효과 입증

- 휴민트
탈북자·접경지 소식통 등 이용
北의 내밀한 속사정 파악 활용
2008년 ‘김정일 양치질’ 정보
北에선 ‘정보원 색출 작업’도

- 테킨트
美軍 키홀·U-2·E-8C 등 전개
國軍 백두정찰기 등 통신 감청
특이한 통신량 증가 상황 없어
‘김정은 신변에 이상없다’ 판단

20일에 걸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두문불출 행보’를 계기로 한반도 전역에서 펼쳐진 정보전이 주목받고 있다. 한·미 정보 당국이 ‘특이 동향 없다’는 일관된 입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휴민트(HUMINT·인적 정보), 테킨트(TECHINT·인공위성과 정찰기 등을 활용한 군사 기술 정보) 같은 정보 역량이 거론된다. 사망설까지 불거졌던 김 위원장이 건재한 모습을 드러내고 나서면서 한·미의 정보 공조 체계도 입증됐다는 평가다. 실제 한·미 정보 당국은 인적·물적 감시 자산을 총동원해 김 위원장의 동향을 추적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안보전문가들에 따르면 김 위원장의 잠적 20일간 최소 8종류의 미군 정찰기가 50여 차례 전개됐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미 정찰망을 빠져나가는 북한의 능력은 나날이 고도화하고, 김 위원장이 장기간 모습을 감추는 일은 앞으로도 반복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보 역량은 중요한 대북 자산으로 여겨진다.

◇내밀한 北 속사정 파고드는 휴민트 = 한국 정부가 확보한 탈북자 네트워크, 북·중 접경지역을 오가는 소식통 등 사람을 이용해 얻는 북한 내부의 정보를 휴민트라고 칭한다. 쉽게 말하면 ‘스파이의 첩보 활동’ 같은 것이다. 북한 지도부의 실제 권력 구도 같은 무형의 정보 자산도 대북 첩보를 분석하는 데 활용된다. 이번처럼 김 위원장이 장기간 자취를 감췄을 때 주변 핵심 측근들의 동향을 파악하면 김 위원장의 행보를 짐작하는 데 도움이 된다. 최근 첨단 과학 기술의 발달로 전통적 방식인 휴민트가 정보 분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줄었다. 그러나 기술력으로는 여전히 접근할 수 없는 북한의 속사정을 파악하는 데 휴민트 만한 수단이 없다.

매 순간 북한 당국에 노출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것은 휴민트의 한계점이다. 자칫 노출돼 추적당하면 색출·숙청 등으로 이어져 휴민트 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 실제로 2008년 정부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상태를 놓고 ‘직접 양치질을 할 정도’라고 밝힌 것이 보도됐을 때 북한에서 정보원 색출 작업을 벌였다고 전해지기도 했다. 우리 정보 당국의 첩보 활동에 민감한 북한이 역정보를 흘린 뒤 정보의 유통 흐름을 파악하려 할 가능성도 오래전부터 거론되는 우려 사항이다.

북한 사회가 워낙 폐쇄적이다 보니 휴민트의 정보수집이 어렵고, 이 때문에 실패한 정보로 판명 난 사례도 여럿 있다.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이 공식 발표되기 전까지 한·미 정보기관들은 이를 감지하지 못했다. 2016년 2월 정보당국은 북한군 총참모장이던 리영길의 숙청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그로부터 3개월 뒤 북한 노동신문은 노동당 7차 대회에서 리영길이 당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출됐다고 보도했다.

◇‘손바닥 위의 북한’, 첨단 기술 활용한 테킨트도 각광 = 첨단 기기나 과학기술을 사용해 수집한 테킨트 정보도 각광받고 한다. 미국이 앞서가는 분야로, 이번 김 위원장의 잠적 이후 동향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테킨트가 상당 부분 활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수백㎞ 상공에서 15㎝ 크기의 물체도 식별해 낼 수 있는 정찰 자산을 통해 김 위원장 전용 열차의 이동 동선을 감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통신 신호를 감청해 수집하는 시긴트(SIGINT·신호 정보), 위성 촬영 등 이미지 정보인 이민트(IMINT·영상 정보) 등이 테킨트 범주에 포함된다. 시긴트는 신호를 감청하는 방식으로 수집된 정보를 말하며, 엘린트(ELINT·전자 정보)와 코민트(COMINT·통신 정보)로 나뉜다. 엘린트의 경우 레이더 신호 등 전파 탐지를 통해 수집한 정보다. 코민트는 이메일이나 팩스 통신 수단을 감청해 얻은 것이다.

미군은 정찰위성 ‘키홀’(Key Hole·KH) 시리즈를 비롯, U-2, 리벳조인트(RC-135W), 조인트스타스(E-8C) 등의 정찰기를 북한 상공에 수시로 띄워 정찰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키홀 시리즈의 경우 1대당 10억 달러에 육박하는 고가 장비로, 초정밀 디지털카메라와 야간 촬영이 가능한 적외선 탐지기 성능을 갖췄다. 평시에는 약 600㎞ 고도에 머물러 있지만 밀접한 관찰이 필요한 경우 영상의 해상도를 높이고자 300㎞까지 고도를 낮추기도 한다. 다만 움직이는 표적을 감시하기가 어렵고, 위성이 정해진 시간에만 북한 상공을 돌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선 위장이 가능하다는 한계점을 가진다. 지난달 19일에는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트위터를 통해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RQ-4)의 한국군 인도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글로벌호크는 20㎞ 고도에서 24∼36시간 동안 비행하며 200㎞ 떨어져 있는 지상 30㎝ 크기의 물체 정찰이 가능하다.

신호 감청 정보인 시긴트도 이번 김 위원장의 동향 파악에 요긴하게 쓰인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 군이 보유한 백두·금강 정찰기가 평양 이남에서 군사분계선(MDL)까지의 군사시설에서 발신하는 무선 통신 신호를 감청하는 데 사용된다. 실제로 한·미 당국자들은 평양에서 특이한 통신량 증가 상황 등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김 위원장의 신변에 특이 동향이 없을 것이란 판단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1월 탈북민 2명이 선상에서 살인사건을 저지른 뒤 남쪽으로 왔다가 북송되는 과정에서도 북한 통신망 감청 정보가 활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시긴트 역시 북한이 의도적으로 역정보를 흘릴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를 감안해 활용할 필요성이 있다.

우리 정부도 자체 운용하는 인공위성이 있지만, 상업 위성에 가까워 정보의 정확성 측면에선 미군의 정찰 위성에 뒤처진다. 현재 우리 군은 정보·감시 자산 자립을 목적으로 오는 2022년까지 1조 원가량을 투입해 5대의 군사위성을 확보하는 ‘425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김유진 기자 klu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