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난민촌 등 무방비 노출
코로나 소독제·마스크 등 없고
감염땐 격리생활조차도 불가능
국제기구들 지원 축소도 ‘문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찬바람은 분쟁과 정치적 핍박을 피해 어렵게 거처를 마련한 난민에게 더욱 가혹하게 불어닥치고 있다. 정부가 없는 탓에 제대로 된 통계 집계도, 관리도, 치료도 어려운 이유로 난민촌 난민들의 생존위기는 날로 가중되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도 최근 분석기사에서 “코로나19는 70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난민과 강제이주자들에게 더 큰 두려움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전했다.

대다수가 빈곤층인 난민촌에서는 소독제나 마스크 등의 개인 보호 장비가 없는 것은 물론, 감염 사실이 확인된다고 해도 제대로 된 시설에서 격리생활을 하는 것조차 불가능에 가깝다. 또 텐트가 다닥다닥 붙어있고 인구밀도가 높은 데다 누구나 출입이 자유로운 이곳에서 코로나19가 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이들에게 도움의 손을 내밀었던 선진국 중심의 국제기구들도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의 여파로 활동이 축소되거나 취소되고 있다는 점이 더욱 큰 문제다. 난민촌이 위치한 국가의 정부도 보건, 경비 비상상황에서 자국민이 아닌 이들까지 보호하는 데 선뜻 손을 내밀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 난민촌에서는 실제로 여러 건의 코로나19 확진 및 집단 감염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다. 수도 아테네에서 북쪽으로 45㎞ 떨어진 말라카사 캠프는 8일 현재 폐쇄돼 있다. 지난 5일 말라카사 캠프에 머물던 53세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자 그리스 당국은 14일간 폐쇄조치를 내렸다. 앞서 아테네 북쪽 75㎞ 지점에 있는 리초나 난민 캠프에 체류하던 아프리카 출신 19세 난민도 확진 판정을 받았다. 보건당국은 직후 해당 여성과 접촉한 것으로 추정되는 캠프 내 체류자 63명을 대상으로 바이러스 검사를 시행했고 이 가운데 23명이 추가로 확진 판정을 받았다.

미얀마 정부의 탄압을 피해 방글라데시에 자리 잡은 로힝야족, 중동 지역에 흩어져 있는 시리아 난민 역시 사각지대에 있는 대표적인 취약 계층으로 꼽힌다. 지난달 말에는 키프로스 공화국이 코로나19 확산 우려를 이유로 지중해를 떠돌던 시리아 난민 200명의 자국 내 하선을 불허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세계 곳곳의 난민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코로나19의 대규모 발병이 공식 확인되지는 않고 있지만 의심 사례가 이미 있는데다 향후 발병 가능성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무함마드 하미드 자만 미 보스턴대 교수는 외교전문잡지 포린폴리시에 “자료가 없다고 해서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코로나19 확진 통계가 나오지 않았다는 데서 잘못되고 위험한 위안을 얻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인지현 기자 loveofal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