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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봉희(1924∼2019)

엄마 계신 곳에 오니까 엄마에 대한 그리움처럼 바람이 온몸을 감싸고 지나가네요. 물소리, 산새 소리도 들리고 노란 생강나무 꽃도 활짝 피어나 엄마 잃은 저를 위로해 주려는가 봅니다. 오늘은 제 마음처럼 봄비가 촉촉하게 오네요. 엄마가 안 계시는 이곳. 몸도 마음도 춥기만 해요. 엄마와 이별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에서 너무도 갑자기 엄마를 보내드렸어요. 그렇지만 엄마. 엄마랑 이렇게 영원한 이별은 아닐 거예요. 언젠가는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어요.

엄마. 오늘은 더더욱 엄마가 많이 보고 싶은데 이렇게 엄마가 많이 보고 싶은 날엔 어찌해야만 하나요. 그렇게 홀연히 떠나가신 후 엄마는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꿈속에서조차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시네요. 너무도 허망하게 엄마를 보내드렸는데…. 엄마, 훗날 엄마 만나러 갈 때까지 편안하게 안식을 누리고 계셔요. 때가 돼서 엄마 계신 곳으로 가게 되면 엄마가 저를 꼭 찾아주셔야 해요. 이젠 막내딸 얼굴 알아보실 수 있겠지요. 몇 년 세월 속에 알츠하이머라는 안 좋은 것이 엄마 머릿속에 10년을 자리해 엄마가 사랑하는 막내딸 얼굴을 잠시 잊고 맘 아프게 사셨지만, 엄마랑 저랑 함께했던 순간을 다 기억하시리라 믿어요.

엄마 사랑해요. 보고 싶어요. 엄마한테 아주 고마웠고 잘 모시지 못해 미안한 게 많았다고 엄마 정신 좋으실 때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못다 한 말이 너무 많아요. 엄마, 엄마의 딸로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예쁘게 잘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엄마가 주신 사랑 속에서 엄마랑 함께했던 시간이 정말 많이 행복했어요.

엄마, 저는 기도할 거예요. 다시 세상에 태어날 수 있다면 또다시 엄마 딸이 되고 싶어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제가 너무 염치없을 거 같으니 그때는 제가 엄마가 되고 엄마가 제 딸로 태어나서 살아봤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제게 주신 큰 사랑, 그렇게 조금이라도 갚아드리고 싶어요. 아마 그렇게 된다 해도 엄마가 제게 주신 크나큰 사랑과 희생의 절반은커녕 엄마의 사랑을 흉내조차도 못 내겠지만, 그때는 엄마의 마음으로 엄마가 제게 주신 사랑과 정성을 조금이나마 전하고 싶어요. 엄마 감사했어요. 불효한 막내딸을 위해서 밤낮으로 노심초사하며 기도하셨을 테지요. 제가 다섯 살 때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가신 후 엄마 혼자 아린 가슴 안고 키워주셨으니 그 긴 세월 동안 얼마나 힘들고 외로우셨을까요.

엄마, 갑자기 엄마랑 함께했던 25년 전 어느 여름날이 생각나네요. 우리 집 거실에 서로 마주 앉아 엄마 수의를 만들었지요. 큰일 닥쳐서 경황없을 때 자식들에게 마지막까지 부담 안겨주지 않으려고 미리 장만하셨었지요. 언젠가 먼 길 떠나실 때 입을 수의를 손수 마름질하던 마음이 어떠셨을까요. 그땐 너무도 철이 없어 그 마음 헤아려드리지 못해 죄스럽기만 하네요. 한쪽에서 엄마가 마름질해주시면 전 박음질을 했지요. 엄마랑 마주 앉아 하루 꼬박 걸려 만들었던 삼베옷 한 벌, 엄마가 입고 하늘나라를 가셨네요. 다행인 건 엄마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제 손길이 조목조목 묻어 있는 삼베 옷 입고 가셨으니 제 사랑과 정성도 함께 걸치고 가셨으리라 생각할게요. 안젤라가 선물해준 묵주도 목에 걸어드렸고, 성당 가실 때 늘 쓰시던 미사보를 두건처럼 쓰신 엄마의 평온한 얼굴은 천사처럼 환하게 곱고, 참으로 이쁘셨어요. 그렇게 이쁜 울 엄마의 마지막 모습과 엄마랑 함께하면서 행복했던 소중했던 시간, 엄마 딸 동자가 잊지 않고 기억할게요. 엄마 사랑해요. 주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세요.

막내딸 정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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