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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쉽게 읽히는 짧은 시편들, 세상과 그 너머의 풍경 깊고 넓게 담아

문효치 시인의 시집 ‘어이할까’(현대시학 발행)는 단숨에 읽힌다. 그러면서 편편이 다시 읽게 만든다. 대체로 짧은 시편은 읽는 이의 시선을 쉽게 받아들이지만, 삶과 세상을 깊고 넓게 성찰하게 만든다. 반세기가 넘는 시력의 공력이 웅숭깊다.

“내 앞에 끊임없이 출몰하는 것들, 때로는 반짝이고 때로는 어둠 속에 숨기도 하는 것들, 보이다가도 보이지 않는 것들, 그것들을 찾아 여기까지 왔다. 손에 잡힐 듯하다 빠져나가는 것들을 위하여”
시집 맨 앞에 실린 ‘시인의 말’이다. 인간의 언어로 우주 섭리를 잡아보려 애쓸 수 밖에 없는 시인의 숙명. 시집 맨 뒤 ‘시인의 고독’ 편에 실린 시편들은 그 숙명을 새긴다.

‘보내고 또 보내도
쉬임 없이 오는
막막한 세월 ’
(‘시인’ 중)

‘매창이 다니던 길
끝에 절 한 채 있네

절에 업히어
구름 속에 흘러가는
살 한 덩이 있네

비켜서서 엿보던
파란 불꽃
말없이 고개 숙여 눈물 흘리네’
(‘시인의 고독’ 전문)

문학평론가인 오민석 단국대 교수는 문효치 시가 직관의 황홀한 힘을 보여준다고 했다. “ 그는 선입견을 배제하고 순수-직관 혹은 순수-의식으로 사물을 대한다. 추상적 관념을 배제하고 순수-직관이 사물을 그 자체로 만날 때 이미지가 섬광처럼 그려진다. 불꽃처럼 순식간에 터지는, 일종의 영지(靈知·gnosis)적 기표들이 그의 시다. 그 기표들은 사물과 의식의 순간적 만남에서 생겨나지만, 이미 사물 깊숙이 들어가 그것의 전모를 그려낸다. 그리고 이 순간의 전(全)인식은 (시인 자신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황홀하고 아름답다.” 오 교수에 따르면, 황홀하고 아름다운 인식으로 전모를 그려낸 작품이 표제작이다.

바람 불 때마다
내 가슴 속에 날아와 쌓인
꽃잎들 어이할까

몸서리치는
저 향과 빛깔

그립다가 아픔이 되는
꽃잎들 어이할까
- (‘어이할까’ 전문)

이번 시집에 대한 평을 쓴 김육 시인은 시편 55편 중 35편에서 달과 하늘이 시어로 쓰이고 있다는 점을 발견해냈다. “문효치의 달을 향한 지향과 흠모는 시적 지향이기도 하지만, 기실은 그의 종교적 지향과 관련이 있다. 인간의 언어는 지식과 경험을 기반으로 하여 체득되고 저장되지만, 그것이 세계를 향해 언어로써 표현될 때는 발화자의 가치관과 교양, 이념과 사상에 기반을 두고 선택, 발화된다.”

서랍 속에 넣어둔 달빛을
오늘은 꺼내보아야겠다

내 마음 속 불빛 다 타고
어두워져

깜깜한 빈 가슴
밝히기 위해

오십 년 전 그녀가 준 그 달빛
꺼내 가슴에 문질러야 하겠다‘
(’달빛‘ 전문)

문효치 시인의 하늘은 달과 별, 해와 바람을 모두 수용하는 절대적 공간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상극과 모순을 넘어서는 천상계를 뜻한다. 그를 통해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불이(不二) 경지를 꿈꾼다는 것이 김육 시인의 해석이다. ’고요‘는 그런 경지에서 낳은 작품이다.

오동꽃에
앉아오시는
저 푸른 그늘을

어찌 간수해야 할 지
나무 위에 머물다가
시나브로 흘러내리는
저 푸른 하늘을

어찌 받아 안아야 할지
(’고요‘ 전문)

이번 시집엔 노경에 접어든 이의 마음 풍경이 담겨 있다. 그것은 달관 쪽에 있기도 하지만, 탄식이 숨어 있고, 또한 새로운 활력에의 의지가 담겨 있다.

’ 그것도 즐거워
어질비칠 거닐며
한 생 건너고 있다‘
(’자화상‘ 중)

’팔십 평생을 괴물같은 세상에서
시달리다 시달리다보니
할아버지가 괴물이 되었다‘
(’그림‘ 중)

’돌처럼 굳었던 몸에
피가 돌고
온기가 돌고

심호흡을 하며
짐승이 살아나고 있다
산을 넘고 있다‘
(’회생‘ 중)

문효치 시인의 시는 천의무봉이지만, 이것이 끝없는 자기 수련의 결실임을 아는 이는 안다. 그것을 정확히 꿰뚫어본 이는 서정시의 장인인 문태준 시인이다. 그는 시 ’갈대밭‘을 옮겨 적고 뒤에 이렇게 풀어썼다.

갈대들이 차례로 엎드린다
바람이 지나가는 중이다
바람도 생각이 있어
여기를 가고 있다
거대한 생각의 몸이
수많은 말들을 쏟아 놓으며
시원스런 걸음으로 지나간다
갈대들은
엎드려 그 말들을
받아 적고 있다
- (’갈대밭‘ 전문)

“갈대밭에 바람이 지나간다. 갈대들이 몸을 매우 굽히고, 몸을 바닥에 댄다. 바람은 생각을 하면서 갈대밭을 지나가고, 갈대들은 엎드린 채 바람의 생각을 적고 있다. 이 시에서처럼 누군가를 혹은 어떤 대상을 ”거대한 생각의 몸“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누군가에게 혹은 그 대상에게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태도를 갖게 된다. 그이를 여러 가능성과 다양성을 지닌 활물(活物)로 보게 된다. ”거대한 생각의 몸“이므로 ”수많은 말“을 하기도 하지만, 자연(존재)의 보법(步法)은 시원시원하고 큼직큼직하고 당당하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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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효치 시인(1943~ )

1966년 서울신문 및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무령왕의 나무새』『왕인의 수염』『별박이자나방』등.
김삿갓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한국시협상 등 수상.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이사장 역임.
현재 계간 『미네르바』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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