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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前 통일연구원장

온 나라가 코로나19 방역으로 경황이 없는 사이에 민간인이 군부대에 무단 침입하는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국민의 안보 우려를 키우고 있다. 지난 1월 3일 민간인이 진해 해군기지의 정문을 통과해 1시간 반가량 부대 안을 휘젓고 다닌 데 이어 3월 7일에는 민간인 시위자 2명이 철조망을 절단하고 제주해군기지에 침입해 시위를 벌였다. 경보체계는 침묵했고 초소 근무자는 1시간쯤 지나서 현장을 확인했으며, 40분쯤 더 지나서 ‘5분 대기조’가 출동명령을 받았다.

이 생쇼가 벌어지던 2시간 가까이 해군작전사령부도 합동참모본부도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만약 침입자가 북한군 특수부대원들이었다면 기지는 아수라장이 됐을 것이다. 3월 16일에는 경기도 시흥 수도방위사령부 예하의 방공진지에 민간인이 울타리 아래 땅을 파고 진지로 무단 침입해 1시간 동안 진지 안을 활보한 사건도 있었다. 이렇듯 올해 들어서만 3차례나 군부대가 민간인에게 뚫리는 것은 결코 예사롭지가 않다.

특히, 제주해군기지의 민간인 침입 시위는 묵과할 일이 아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를 ‘작은 그림’에서 분석한다면, 병력 수급 정책의 문제점부터 지적해야 한다. 미·중 신냉전이 격화하고 일본과 중국이 해양 군비 경쟁을 벌이면서 ‘바다로부터의 위협’이 중시되는 것이 요즘의 추세다. 제1, 2차 연평해전에서 보듯이 북한의 도발도 육지보다는 해양에 집중되는 편이다. 그런데도 해군과 해병대의 병력은 김영삼 정부 때 3만2000명과 2만8000명으로 제한된 후부터 요지부동이다. 그래서 해군은 새 함정이 건조되면 ‘쥐어짜서 잘라내기’(squeeze and slice) 방식으로 육지 근무 병력을 떼어내 함정에 배치한다. 정부가 지상군을 30만 명까지 줄인다고 하는 판에 육군에 해군기지 경비를 요구할 수도 없다.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난감하다.

‘큰 그림’에서 이 사건을 분석한다면, ‘붕괴되는 한국군’의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지금도 북한의 핵무기 공장이 가동되고 중국이 엄중한 미래 위협으로 다가오는데도, 문재인 정부는 ‘국방개혁’이란 미명 아래 병의 복무 기간을 21개월에서 18개월로 단축한 데 이어 병력을 줄이고 정예 사단들을 하나둘 해체하고 있다. 국군기무사령부는 2018년 6월부로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해체·개편되면서 대공(對共) 기능을 거의 상실했다.

남북관계의 기복과 무관하게 항상 부릅뜬 눈으로 북녘을 주시해야 하는 것이 군대이건만, 정치가 군을 흔들면서 ‘코드 군대’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국방백서에서조차 ‘주적(主敵)’ 표현이 사라지고 군의 안보교육이 교양강좌로 바뀌는 것은 물론, 병영 문화 개선이라는 명분으로 취해지는 일련의 조치들이 정신전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많다. ‘코드 수뇌부’ ‘샐러리맨 간부’ ‘날라리 병사’ 등이 어우러진 군대에서 철조망이 뚫리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지난해 6월 북한 목선이 아무런 제지도 없이 삼척항에 입항한 사건 이후 군의 경계 태세가 강화된 줄로 알았지만, 국민은 계속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히고 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잇달아 발생한 군의 경계 실패는 원인이 어디에 있든 결코 우연이거나 일회성이 아니라는 점에서 책임의 엄중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즈음처럼 군의 경계 태세가 뚫릴 때마다 되새겨봐야 하는 군사 금언이 있다.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