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인류는 천연두와 장티푸스, 결핵 등 수많은 전염병을 극복해 왔다. 그러나 전염병과의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그리고 최근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새로운 전염병이 속속 출현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 13가지 / 제니퍼 라이트 지음, 이규원 옮김 / 산처럼

안토니우스역병·페스트·매독
고통속 죽어가는 사람들 묘사
어떤 희생을 치르고 극복해서
현재 문명에 도달했는지 해설

-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 로날트 D. 게르슈테 지음, 강희진 옮김 / 미래의 창

레닌, 동맥경화로 죽지 않았다면
히틀러, 시력 나쁘지 않았다면 등
최고 권력자들의 질병 기록 통해
역사에 영향 끼친 의학사건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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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교수의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를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전율하는 대목이 있다. 저자는 스페인의 피사로가 인구 수백만 명에 달하는 잉카제국을 부하 170여명 만으로 멸망시켰던 것은 바로 총, 균, 쇠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유럽인들이 가져온 장티푸스, 홍역, 천연두는 아메리칸인디언 95%를 몰살시켰다. 그리고 이 때문에 아메리카 대륙에 흑인들을 데려갔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역사 속의 한 장면이었다. 정보기술(IT)·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이 지배하는 21세기에는 그 같은 야만적인 일이 벌어질 수 없다고 사람들은 믿었다. ‘남의 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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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벌어지는 사태는 그런 믿음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있다. 호흡기 감염 질환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환자가 급증하며 11일 현재 7700명을 넘어서고 있다. 사망자도 60명에 이른다. 휴업과 폐업, 재택근무로 거리가 흉흉해지면서 ‘아노미’ 상황도 우려된다.

위생과 보건 환경이 취약했던 20세기 이전 우리 역사는 사실 천연두와 장티푸스, 결핵, 소아마비, 나병 등 수많은 전염병과의 ‘투쟁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에볼라, 에이즈,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등 신종 전염병이 속속 출현했다. 인류는 여기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미국의 칼럼니스트인 제니퍼 라이트가 쓴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 13가지’는 인류에 가장 큰 해를 끼친 전염병들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발생했고 어떤 피해와 공포를 일으켰는지, 또 사람들은 이를 어떻게 극복해냈는지를 소개한다.

고대 로마에서 창궐한 안토니우스역병을 비롯해 중세 유럽에서 사상 유례없는 대재앙이 된 가래톳 페스트(흑사병)와 지금도 근절되지 않는 매독, 결핵, 콜레라, 장티푸스 등을 다룬다. 사람들이 정신을 잃고 춤을 추게 되는 무도광(舞蹈狂) 역시 전염병으로 규정한다.

책에서는 치료법이나 전염병을 퇴치할 백신보다는, 끔찍한 전염병의 발병과 이로 인해 고통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묘사하면서 어떻게 위기를 헤쳐나가고 피해를 최소화했으며, 어떻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어떤 희생을 치르며 고귀한 성취를 이뤄내 현재의 문명 세계에 도달하게 됐는지를 신랄하게 공개한다.

저자는 “공포에 굴복해 남에게 책임지우지 않는 한, 우리는 질병과 질병에 붙은 낙인을 이겨낼 수 있다. 서로가 아니라 역병과 맞서 싸울 때 우리는 단지 질병을 물리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과정에서 인간성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썼다. 384쪽, 2만 원.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는 로날트 D 게르슈테의 저작으로 페스트와 천연두, 에이즈까지 인류를 위협한 전염병과 알렉산더 대왕부터 히틀러까지 최고 권력자들의 질병에 대한 기록이다. 다수의 역사학자는 거물급 정치가 한 명이 역사의 진행 방향을 좌우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히틀러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20세기의 유럽사는 달라졌을 것이고,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1985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선출되지 않았다면 냉전 시대가 평화롭게 종식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끊임없이 묻는다. 알렉산더 대왕이 33세의 이른 나이에 죽지 않았더라면? 악마의 저주, 매독으로 쓰러진 권력자들은 누구일까? 로마 황제들이 유독 정신병에 시달린 이유는? 잉글랜드 여왕, 메리 튜더의 임신이 ‘상상’에 그치지 않았다면? 히틀러의 시력이 약해지지 않고 그냥 화가로 지냈다면? 레닌이 53세에 극심한 동맥경화로 사망하지 않았더라면?

저자 게르슈테는 독일의 의사이자 역사학자다. 특파원으로 워싱턴 DC에 머무르며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역사의 전개에 영향을 끼친 의학적인 사건에 관심을 기울이고 연구해 왔다. 368쪽, 1만7000원.

현대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감염 위험이 커졌고, 항공산업의 발달로 고속·대량 이동이 가능해져 확산 위험이 증대됐다. 그리고 지구온난화로 인한 병원체 폭증의 위험과 공장식 밀집 축산으로 병원체 변이의 위험, 그리고 무분별한 개발로 미지 병원체 접촉의 위험이 커졌고, 세계 곳곳에서 권위주의 부패 정권이 횡행해 전쟁, 내전, 분쟁 등의 충돌이 끊이지 않아 기본적인 위생 및 방역 체계가 붕괴되고 있다.

현대의 과학은 각종 질병과 전염병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결코 낙관적이지는 않다. 중국 우한(武漢)을 넘어 전 세계에 퍼져나가고 있는 코로나19는 향후 우리 인류가 ‘전염병 시대’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그 역량을 가늠해보는 바로미터가 될지도 모른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