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태영 前 국방부 장관

6·25 폐허에서 경제·민주 성취
아카데미賞은 3번째 기적 상징
北核 탓 통일의 기적은 멀어져

미래 파괴하는 암담함에 통탄
지도층 타락과 국민 無心 심각
부끄러움 모르는 풍토 없애야

지난 10일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지켜보던 온 국민은 환호성을 질렀다. 서울올림픽과 평창동계올림픽, 많은 한국 여성 골퍼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우승, 싸이와 방탄소년단(BTS)에 의해 세계에 널리 알려진 K-팝 등으로 문화·예술·체육 면에서 국가 브랜드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 하지만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은 그 무엇보다도 큰 문화적 성취다.

6·25전쟁의 잿더미에서 출발한 대한민국은 첫 번째 기적으로 세계 10위대의 경제 발전을 이뤘고, 두 번째 기적으로 민주주의 발전을 이뤄냈다. 이후 많은 사람은 세 번째 기적으로 남북통일을 기대했다. 그러나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로 아주 멀어져 버렸다. 다만, 이번 아카데미상 수상으로 세 번째 기적에도 근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눈을 돌려 우리의 내부를 돌아보면 나라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암담함에 가슴을 치게 된다. 정부가 주도한 정책으로 인해 수출·투자·소비 지표가 줄줄이 악화하고 있으며, 굳건했던 한·미 동맹의 약화, 한·일 관계의 악화, 굴종적인 대(對)중국 관계로 인해 외교 무대에서의 입지도 불안해지고 있다. 미·북 간 북핵 협상에 진전이 없고, 북한이 한국 정부를 조롱하고 무시하는 상황에서 북한 비핵화와 이를 통한 평화로운 한반도 추구도 신기루에 불과해 보인다.

법과 원칙에 의한 수사를 계속하려는 검찰총장과 이러한 시도를 무산시키려는 세력들의 상식을 벗어난 조치와 행태들, 장관 지명자들의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밝혀지는 과거의 엄청난 비리와 이를 무시한 장관 임명이 있었다. 또, 제1야당을 완전히 무시한 가운데 이뤄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제정과 선거법 개정 등 정상적인 법치국가에선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왜 이런 일이 개선되지 않고 반복되는가?

첫째는, 사회 지도층과 공직자들이 공인(公人)으로서의 자세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공직 수행자는 공적 자아와 사적 자아의 충돌을 겪게 된다. 자신의 입지를 위해 정도(正道)를 벗어난 행위를 시도하면서 상급자를 속일 순 있으나, 이 모든 행위는 하급자나 주변인들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많은 공직 수행자는 입으론 사회정의를 내세우지만, 본인과 가족들의 모든 행위는 예외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거짓말 문화 때문이기도 하다.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 이영훈 서울대 교수는 많은 사례를 제시하면서 거짓말에 관대한, 타락한 정신문화의 문제점을 신랄히 지적한다.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의 아들과 관련한 김대업의 주장이나 2008년 광우병 파동 등을 생각해 보자. 마침내 이런 말이 거짓임이 밝혀졌어도 과거지사라는 이유로 명확한 해명과 법적 조치도 없이 어물쩍 넘겨 버렸다. 정론(正論)을 지켜야 할 상당수의 학자와 재판관조차 명확한 근거를 찾는 노력 없이 거짓말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풍토가 만연하다.

세 번째 문제는, 국민 대다수가 이런 사안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무력감에 빠져 국가와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안은 정치인들과 정부 및 사회의 기관들에 의해 해결되는 것으로 간주하고 이에 대해 깊이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생업에 매달리면서 일시적인 편의와 이익에 만족하는 것이다. 이들은 국가의 운명이 자신의 운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망각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우리의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지도층부터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정신으로 공적 자아(自我)를 갈고 닦아야 하며 이를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또한, 진실은 모든 일의 근원이며 모든 행동의 으뜸임을 깨닫고 거짓말을 부끄러워하는 정신문화를 확립하며 거짓 행위는 끝까지 추적하고 근절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국민은 국가가 처한 사안에 대해 적극 나서야 하며, 국가 지도층은 이를 위해 해당 사안에 대한 국민의 이해도를 높이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저서 ‘독립정신’에서 주장했듯이 국민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권력에 의존하는 습성을 버리고, 자신만을 위하는 사사로운 생각에서 벗어나며, 낡은 습관을 버리고 나라의 뿌리가 돼야 한다. 이와 함께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으로 하나의 가치에 뜻을 모을 수 있을 때 대한민국의 네 번째 기적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