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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겸 동국대 교수·헌법학

2019년 후반, 약 10년 동안 잠잠했던 형법상 피의사실공표죄가 느닷없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그리고 2020년 2월 초, 다시금 선거범죄 등에 대한 공소장 비공개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전자는 형법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알 권리와 관련해 문제가 됐고, 후자는 법무부의 훈령을 근거로 국민의 알 권리를 제한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형사 절차에서 기소 전과 후는 분명하게 구분된다는 점에서 양자는 차이가 있다.

형법 제126조의 피의사실공표죄는 유명무실하다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으로 떠올랐다. 이 사건으로 검찰은 2010년 법무부 훈령으로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을 제정, 시행하면서 피의자의 인격과 국민의 알 권리를 조화롭게 보장하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2019년 후반 이전까지 공인(公人) 또는 공적 인물이 연루된 범죄는 물론 사회적으로 중대한 범죄에 대해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이란 측면에서 수사 중에도 브리핑의 형태로 피의사실은 어느 정도 공개됐다.

2019년 10월, 법무부는 피의자의 인격권과 재판권 보장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새롭게 훈령으로 제정했다. 이런 훈령은 행정규칙으로 행정기관 내부적 구속력밖에 없다. 그런데도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훈령을 근거로 법무부는 형사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사건 관계인의 명예 및 사생활 보호, 수사 중인 피의자에 대한 피의사실 공표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국회의 공소장 제출 요구를 거부하다가 공소 사실 요지만 제출했다고 한다.

피의사실공표죄는 피의자의 인격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현행 헌법은 어떤 기본권도 절대적으로 보장하지 않는다. 인격권은 기본권이지만 국가의 안전보장 등을 위해 필요한 경우 제한할 수 있다. 공인의 인격권에는 그들이 사회활동을 통해 형성한 사회적 인격도 포함되기 때문에, 이 영역에서는 국민의 알 권리가 우선 보장돼야 한다. 피의사실공표죄는 공판청구 전으로 한정돼 있어서 공소가 청구되면 적용되지 않는다. 물론 공소 내용은 재판 과정에서 드러나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는 피고인의 기본권이 더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는 중대 형사사건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다.

현대 법치국가에서 국민의 알 권리는 헌법재판소의 표현처럼 언론의 자유와 동전의 양면처럼 밀접하게 관련된 중요한 기본권이다. 알 권리는 정보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과 수집, 국가기관에 대해 정보 공개를 요구할 수 있는 기본권으로, ‘정보의 자유’라고 할 수 있다. 범죄의 유무(有無)가 재판을 통해 결정된다고 해도, 피고인이 공인이라면 공소장의 내용에 대해 국민은 알 권리가 있다. 즉, 공소가 청구되면 피고인의 인격권보다 국민의 알 권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국회는 국회법 제128조에 근거해 국민적 관심이 큰 사건을 검찰이 기소한 경우에 공소장 제출을 요구할 수 있고,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법무부는 이를 거부할 수 없다. 공소장의 공개는 2005년 수사 과정의 투명성을 위한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도입됐다. 물론 ‘공공기관 정보공개법’에 따라 재판권 침해가 우려되는 수사·재판 관련 정보를 예외적인 비공개 대상 정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공소장의 비공개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국정의 투명성을 훼손하게 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