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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한폐렴 후폭풍…‘보건용 마스크 대란’

中서 원재료 수입조차 어려워 대량생산 힘들고 손소독제 원료도 확보 곤란
‘마스크 품귀’는 전세계적 현상… 완제품 수입도 쉽지않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우한 폐렴)으로 보건용 마스크가 ‘국가적’ 품절 상태다. 이미 많은 보도를 통해 알 수 있듯 최근 마스크 가격은 생산원가의 수십 배에서 심지어 수백 배까지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고 있다. 이 같은 비정상적인 마스크 가격의 폭등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중간판매상들이 사재기하면서 발생했다. 급기야 정부는 5일부터 마스크와 손 세정제 등을 사재기하거나 매점매석하는 자에 대해 징역형이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국가 고시를 개정해 시행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국민은 마스크 구하기가 쉽지 않다.

◇‘보건용 마스크’가 뭐길래=보건용 마스크는 ‘KF’(Korea Filter) 등급을 받은 마스크를 뜻한다. KF 등급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입자 차단 정도에 따라 ‘KF80’과 ‘KF94’ ‘KF99’ 등 3가지 기준에 따라 부여하는 등급이다. 식약처 허가를 받은 보건용 마스크에는 ‘KF’가 표기돼 있으며, KF 뒤의 숫자는 입자 차단 성능을 의미한다. 즉 80, 94, 99의 숫자는 마스크를 쓴 사람이 숨 쉴 때 먼지가 걸러지는 정도를 의미한다. ‘KF80’은 평균 0.6㎛ 크기의 입자를 80% 이상 걸러낸다는 의미다. ‘KF94’와 ‘KF99’는 평균 0.4㎛ 크기의 입자를 각각 94%, 99% 이상 걸러낸다. 머리카락 지름이 약 70㎛인 것을 감안하면 머리카락보다 10분의 1 이하의 작은 미세입자까지 잡아준다는 얘기다.

KF 등급을 받기 위해서는 식약처가 지정한 의약외품 마스크시험검사기관에서 엄격한 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가장 먼저 미세 비말을 얼마나 걸러내는지를 살피는 ‘분진 포집 효율’ 시험을 거쳐야 한다. 마스크를 고정한 뒤 분무기 장비를 통해 30초 정도 비말과 먼지를 뿌려 투과율을 살펴보는 실험이다. 걸러지는 정도에 따라서 각각의 등급을 받는다. 이후 마스크의 흡기 저항을 시험하는 실험과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미세먼지보다 입자가 작은 염화나트륨으로 채워진 밀폐 공간에 들어가 트레드밀을 뛰는 트레드밀 실험도 통과해야 한다. 메틸오렌지 시약 등으로 마스크 순도와 포름알데히드 포함 여부와 마스크 단면 검사 등 이외에도 다양한 단계를 통과해야 한다.

◇왜 가격 폭등했나=지난주 설 연휴가 끝나고 국내에서도 감염 확진자가 나와 우한 폐렴에 대한 공포감이 급격히 퍼지기 시작했다. 이 시점을 기준으로 보건용 마스크와 손 세정제 등 위생용품에 대한 판매가격이 급등했다. 실제, 지난 1월 28일 유명 온라인쇼핑몰에서 1만2000원가량 하던 ‘웰킵스 스마트 황사 방역 마스크 대형 KF94’ 마스크 1박스(25개) 가격이 이튿날 6만3750원으로 껑충 뛰었다. 이후 곧바로 품절사태가 벌어져 그마저도 구입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후에도 마스크 가격은 계속 상승해 약국이나 대형마트는 물론 온라인쇼핑몰에서도 구매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심지어 지난 4일에는 한 온라인쇼핑몰에 KF94 유아용 마스크 1박스(75개) 가격이 무려 42만7500원에 올라와 네티즌들이 기겁하기도 했다.

마스크 가격 폭등은 기존 유통망이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현재 마스크의 국내 유통체계는 제조업체→대리점 혹은 도매상→유통업체 및 제약사→의약품대리점→약국 및 유통채널로 이어진다. 제약사나 마스크 브랜드사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 납품을 받아 한 단계가 더 추가되기도 한다. 반대로 중간 단계들을 없애고 제조업체와 유통업체 상품기획자(MD)가 직접 거래하거나 제약사 영업조직이 대형 약국과 직접 거래하는 형태도 많다.

그런데 우한 폐렴 사태로 국내뿐 아니라 중국 쪽의 마스크 수요가 폭증하면서 중간 판매상이나 중국 보따리상들이 직접 제조업체 공장을 돌면서 사재기를 하는 등 물량을 빼돌리면서 기존 유통망이 정상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주로 면세점에서 물건을 대량 구매해 왔던 중국 보따리상들과 중국으로 온라인 해외 구매대행을 하는 판매업자 등이 브로커로 나서면서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 국내 한 마스크 업체의 경우 브로커들의 주문이 폭발하면서 지난 주말까지 주문받은 수량만 1억 개에 달했다. 카카오톡에서는 브로커와 업자들이 거래 정보를 공유하는 오픈 채팅방이 다수 개설돼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한 국내 업자는 “공장과 직거래는 초기 며칠 사이에 이미 싹쓸이됐고, 현재는 정부 단속 때문에 사재기한 브로커들이 물건을 비싼 값에 팔고 이걸 구매한 판매상들이 또다시 되파는 등 2차, 3차, 4차 거래가 이뤄지면서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며 “공장 쪽에서 몰래 확보한 물건들이 아직 있다고 하는 업자가 많은데, 사기꾼도 많아 정상적인 거래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유통업체 ‘비상’=이 때문에 기존 유통망을 형성했던 오프라인, 온라인 유통업체 모두 비상이 걸렸다. 대형마트들은 1명 정도였던 마스크 담당 MD를 보강하는 한편, 납품업체들과 긴급 협의에 나서고 있다. 이번 사태로 올봄 물량까지 모두 소진한 제약사들은 추가 조달에 애를 먹고 있다. 대한약사회는 최근 제약사들과 긴급간담회를 하고 중앙사고수습본부 등에 제약사에 우선적으로 마스크와 손 소독제가 공급되도록 대책 마련을 건의하기로 했다. 작은 점포가 전국에 퍼져 있는 편의점의 경우 특정 지역, 점포로만 물량이 몰리거나 오래도록 공급이 아예 안 되는 상황 등을 방지하기 위해 발주 주기와 발주 수량을 제한하고 있기도 하다. BGF리테일의 CU는 마스크 총 9개 품목의 발주량을 10개씩, 격일 발주로 정했다. CU 관계자는 “전국에 1만3800여 개 매장이 있기 때문에 안정적이고 꾸준히 물건이 입고되는 것이 중요해 수량과 기간을 정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사업자들이 온라인상에서 아무 간섭 없이 물건을 판매하는 오픈마켓의 경우 가격 방어와 사재기 방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티몬은 ‘이상 거래 탐지시스템’을 도입해 불법적으로 이득을 취하는 사례나 재판매를 목적으로 비정상적인 구매활동을 하는 구매자들을 걸러 내고 있다.

티몬 관계자는 “구매 제한 수량보다 하나씩 적게 여러 번 구매한 계정을 역추적해 하루에도 여러 건을 주문 취소하고 적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쿠팡과 11번가 등도 비정상적으로 가격을 크게 올리는 행위 방지를 위해 모니터링을 강화했다. 그러나 24시간 제한 없이 수많은 판매자가 실시간으로 물건을 올리는 오픈마켓 특성상 완전한 모니터링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한 오픈마켓 관계자는 “다수의 판매자가 있고 제품별 수량 등이 다 달라 가격 판단을 일일이 해야 하기 때문에 100% 잡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마스크 품귀’ 세계적 현상, 수입도 어려워=마스크 품귀 현상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어서 물량 수입도 쉽지 않다. 중국 보따리상들이 동남아시아 등의 마스크 생산공장 쪽에서도 이미 사재기를 하고 있어 수입이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홍콩에서는 한 업체가 마스크를 박스 단위로 판매하고 나서자 1만여 명이 줄을 서는 진풍경도 펼쳐졌다. 대만 당국은 4일부터 일반 편의점에서 마스크 판매를 전면 금지하고 약국 판매로 일원화했다. 중국으로부터의 마스크, 손 소독제 원재료 수입이 어려워지는 것도 수급 불안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 내 이동이 원활하지 못해 원재료 공장들도 제조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중국 내 수요 폭등으로 한국으로의 반입은 생각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 보건용 마스크 종류

‘KF80’은 평균 0.6㎛ 크기의 입자를 80% 이상 걸러낸다는 의미다. ‘KF94’는 평균 0.4㎛ 크기의 입자를 94% 이상, ‘KF99’는 평균 0.4㎛ 크기의 입자를 99% 이상 걸러낸다.

임대환·유현진·이승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