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21일 프랑스 파리 로댕 미술관에서 열린 크리스찬 디올의 ‘2020 봄·여름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서 모델들이 그리스 여신과 같은 모습을 연출하는 드레이핑 기법을 활용한 드레스를 선보이고 있다. 크리스찬 디올 제공

크리스찬 디올 ‘2020 봄·여름 컬렉션’

고대의 ‘페플럼 디자인’ 재해석
드레스·슈트에 현대적으로 접목
금빛 아우터위에 대담한 꽃장식
강한 힘 가진 여성성 한껏 드러내

구름 형상 드레스·벼 이삭 화관
자연과 조화이루는 리더십 표현
갑옷·스팽글로 여전사 모습까지

“여성이 세상을 지배했다면 어땠을까?”

크리스찬 디올의 ‘2020 봄·여름 오트 쿠튀르 컬렉션’은 미국의 대표적인 페미니즘 예술가인 주디 시카고가 세상에 던진 이 질문을 주제로 전개됐다. 프랑스 파리 로댕 박물관에, 여성의 지위 향상을 의미하는 거대한 설치 작품 안에서 펼쳐진 이번 컬렉션은 고대 그리스의 여신을 떠올리게 하는 디자인이 대거 소개됐다.주디 시카고는 ‘최후의 만찬’을 여성의 시각으로 재창조한 작품인 ‘디너파티’(1979년 작)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번 컬렉션에서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와 협업해 로댕 박물관 정원에 여신을 상징하는 설치 작품 ‘여신상’(The Female Divine)을 디자인했다.

패션쇼에서는 강한 힘을 지닌 여신의 모습이 현대 여성에게서도 충분히 드러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디자인이 주를 이뤘다. 금빛 의상이 많았다. 금색 실을 엮거나 소재를 얇게 조각조각 낸 페플럼 스타일로 상의와 하의, 소매 등을 디자인했다. 프린지로 뒤덮인 금빛 드레스의 강렬하면서도 우아한 움직임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고대의 페플럼 디자인을 주요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다. 드레스는 물론 슈트도 페플럼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흰빛, 금빛뿐 아니라 푸른색, 압생트색, 아마란스색 등 다양한 색상을 사용했다. 고대 그리스 여성의 튜닉 페플럼이 현대적인 이브닝 드레스로 재탄생했다. 드레스를 덮을 정도로 긴 길이의 금색 아우터 위에 대담하게 수놓은 꽃장식 등의 디자인은 힘을 가진 여성의 모습을 드러내 시선을 압도한다.

남성적인 턱시도 대신 금실로 짠 하운즈투스, 헤링본 소재로 만들어져 여성의 라인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슈트, 스커트, 재킷 블라우스는 현대 사회에서도 고대 그리스 여신의 디자인이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미지 크게보기 디올 아카이브에서 재해석한 고대를 상징하는 액세서리. 크리스찬 디올 제공

여성이 지배하는 세상은 자연을 정복하기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모습일 것이라는 메시지도 강조했다. 프릴을 여러 겹 붙여 광택이 있고 다소 딱딱한 소재인 ‘튈’이나 여러 색의 실을 사용해 무늬를 짜낸 두툼한 원단인 ‘자카드’로 여신의 모습을 보여줬다. 또 벼 이삭 형태의 화관 등으로 포인트를 줘 여성의 창조적인 힘과 조화를 이뤘다. 구름을 형상화한 드레스, 폭풍우 치는 하늘의 모습을 드러낸 실루엣 등으로 자연을 재현했다.

여신과 함께 여전사의 모습도 대거 등장했다. 섬세한 끈 자수 장식과 사슬 같은 모양의 갑옷 디자인, 사자 머리 장식, 스팽글 장식 등이 여전사의 모습을 담아냈다.

이번 쇼에 사용된 액세서리들도 1940년대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었다. 고대 장신구를 연상시키는 꽃, 뱀을 상징하는 금빛 머리 장식, 정교하게 도금된 목걸이, 귀걸이, 팔찌는 동물과 꽃 잎사귀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그리스·로마 시대를 나타내는 샌들은 발목 위에 매듭으로 연출하는 스타일로, 편안하면서도 우아하다.

이번 컬렉션을 통해 시대를 뛰어넘는 패션과 여성의 창조적인 힘에 대한 찬사를 보여준 치우리는 그가 꾸준히 탐구하고 있는 주제인 ‘의상이란 현대적인가’를 다시 한 번 보여주며 디올의 정체성을 강화했다. 치우리는 발렌티노의 아트 디렉터로 명성을 쌓았고, 2016년 크리스찬 디올 역사상 최초의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됐다. 지난해에는 패션과 페미니즘에 기여한 공로로 프랑스 최고 권위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수상했다.

유현진 기자 cworang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