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이돈희 전 교육부 장관의 서재 책상 위에는 손때가 묻어나는 ‘현대 세계의 지성 존 듀이의 철학’ 서적이 놓여 있었다. 듀이는 암기·주입식 교육을 문제 해결 중심의 프로젝트 교육으로 바꿔 놓은 ‘실험학교’로 잘 알려져 있다. 민족사관고등학교 교장 시절을 “과학자가 실험실에 가는 것처럼 가장 재밌던 시기”라고 한 이 전 장관의 얘기는 듀이의 삶을 연상케 했다. 김호웅 기자

민사고 ‘세계수준’ 끌어올린 비결

“그 학교(민족사관고) 운영할 때 정말 재미있었다. 대학 입학 성적이 좋아서 즐거웠던 게 아니라, 아이들이 학교 프로그램을 즐기고, 열심히 했다. 장관 출신이 왜 교장으로 가냐고 묻길래, ‘난 교육학자다. 과학자가 실험실에 가는 것과 같다. 학교 현장에서 좋은 학교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답해줬다. 그 실험 끝에 민사고는 일본, 대만 등 국제적으로 관심을 받았다. 미국 아이비리그 학생 선발팀이 민사고까지 직접 와서 학생 선발을 해갈 정도였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민사고 교장을 지낸 이돈희 전 교육부 장관의 회고 내용이다. 이 전 장관은 교육 정책을 담당하면서 자율형사립고의 전신인 자립형사립고 도입 과정을 주도했으며, 직접 민사고를 세계적인 수준에 올려놓은 주인공이다.

그는 민사고 성공의 원동력을 철저하게 ‘자율적인 실험 정신’에 있다고 했다. “이런 프로그램을 했다. 무학년 교육과정. 학년이 없는 것이다. 예컨대 영어, 수학의 경우 잘하면 바로 1학년을 하지 않고 2학년 과정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만약 3학년 수준이 넘는다 하면, 이웃 대학의 영어 교수의 도움을 받아 할 수 있는, 앞이 열려 있는 교육과정이다.”

당시 교사들은 ‘감독관청에서 뭐라 하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는데, 이 전 장관은 본인이 책임지겠다며 밀어붙였다. 나중에는 교육부조차 무학년 제도 정책을 연구했다.

“아이들 학생부도 3권분립을 시켜서 국가제도처럼 운영하도록 하기도 했다. 학교에 자율성을 주면 이런 실험이 가능하다. 이런 실험들이 일반 학교에서도 활용될 수 있도록 퍼트리는 기능도 한다. 당시 토론교육도 강화했다.”

처음 민사고와 인연을 맺었을 때만 해도 민사고는 ‘시골 면사무소’보다도 못했다고 한다. “처음 민사고에 가보니 기가 막히더라. 학년당 40여 명이었는데, 학교가 행정을 하는 게 시골 면사무소보다 못했다. 직원들이 결재를 이사장에게 받아야 할지, 학교장에게 받아야 할지도 모를 정도였다. 어떤 교사는 “우리 학교는 시간표가 없다”고 하더라. (웃음) 당시 파스퇴르유업이 민사고를 지원했다가 부도가 나 지원을 하지 못하자, 정부가 허락한 게 등록금을 일반고의 3배로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전 장관은 아이비리그에 학생을 보내니 신문에서 난리가 났고, 물러날 무렵에는 아이비리그에 90명을 보낼 정도로 4∼5년 사이에 크게 바뀌었다고 말했다. “미국 US투데이라는 신문이 아이비리그 대학에 졸업생을 보낸 고교를 평가한 적이 있는데, 민사고가 20위권에 들어갔다. 미국 밖에서는 1등이었다.”

인터뷰 = 이관범 사회부 차장 frog7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