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의 위험한 ‘김정은 짝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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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협 국제부장

美 충격적 솔레이마니 제거도
軍의 참수작전 훈련 동영상도
김정은에겐 ‘종이호랑이’일뿐

북·이란 核커넥션 기류 고조로
두 개 전선 현실화 우려되는데
文정부, 제재완화에 힘만 낭비

2020년 벽두부터 세계에 ‘두 개의 전선(戰線)’이 동시에 불붙을 조짐이다. 중동 전선과 한반도 전선이 국제 화약고다. 이란과 북한 모두 핵 개발 야욕, 군사도발 문제로 미국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중동에서는 미사일이 오가는 군사 충돌이 언제 재연될지 모른다. 북한도 대화의 문을 완전히 닫아놓지 않았을 뿐 미국을 향한 ‘도발 선물’ 엄포를 거두지 않은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란의 제2인자 가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 제거 작전을 전개하던 무렵에 북한에는 친분을 상기시키는 친서 외교로 대화를 꾀했는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받아들이는 메시지는 트럼프의 기대와 전혀 다른 모습이다. 드론을 가장 무서워했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달리 아들 김정은은 충격적인 솔레이마니 표적 제거 다음 날 공개적인 민생 행보를 벌였다. 이미 미군의 ‘참수작전’ 훈련 동영상을 봐왔던 김정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행동 변화로는 이어지지 않을 정도의 충격, 딱 그 정도까지다.

오히려 김정은이 핵 완성 필요성을 절감했을 개연성이 더 크다. 미국에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핵 보유만이 해답이라는 판단에서다. 미국의 대응 태도도 김정은 오판을 부추길 수 있다. 이라크 내 미군 기지에 대한 이란의 미사일 공격에 미국은 대대적인 군사반격이 아니라 제재 강화를 발표하는 데 그쳤다. 제재 강화 정도의 채찍이라면 김정은은 미국에 더 많이 얻어낼 수 있는 군사 도발이 보다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하다. 대북 제재가 분명 아픈 조치이긴 해도 주민들에게 제2 고난의 행군을 호소해온 김정은에게는 돌 하나 더 얹어지는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화의 손을 내미는 트럼프가 종이호랑이로 비칠 뿐이다.

2016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7개국이 참여해 전격 체결했던 이란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가 폐기 수순에 돌입한 점도 변수다.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오른팔을 잃은 대신 핵 개발 재개를 선언하는 명분을 얻었기 때문에 가능한 시나리오다. 북한은 비핵화 합의를 파기하고 핵 개발을 재개하려는 이란과 손잡고 커넥션을 강화해 국제사회에 공동 대응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북한의 6차례 핵실험 경험은 이란에 비싸게 팔 수 있는 상품이기도 하다. JCPOA가 평화적 핵 활동 및 5% 우라늄 농축을 허용해왔기 때문에 이란은 포르도·아라크 핵시설을 통해 일정 정도 핵 능력을 유지하고 있다. 핵 보유를 결심한 순간부터 생산까지 걸리는 이란의 ‘브레이크 아웃 타임’(break out time)은 고작 1년 정도에 불과하다. 하메네이와 김정은 모두 절박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설정한 레드 라인을 무시하고 손을 잡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열려 있는 셈이다.

북한에서 잇달아 나온 언행의 지향점도 뚜렷하다. ‘대북 제재 완화와 비핵화 조치 교환 불가’ 노선은 제재를 일거에 제거해야만 비핵화를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겠다는 얘기와 다름없다. 그러니 일부 제재 해제 정도로 핵 포기 결단과 맞바꾸는 해법을 북한에 기대하기는 힘들다. 이는 단순히 벼랑 끝 전술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김정은이 원하는 대로 상황이 전개되지 않을 경우 실제로 가겠다는 새로운 길이다. 한국과 미국으로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선택지다.

이런 정도의 상황이면 대북정책의 기본 인식과 틀이 바뀌어야 하는데 문재인 대통령의 북한 사랑은 변함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김정은은 전략적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문 대통령은 고작 대화의 모멘텀을 찾는 데 힘을 낭비하고 있다. ‘제재의 틀을 존중하는 범위 안에서의 제재를 완화하는 여지 찾기’는 그럴싸한 말일 뿐이다. 한·미 동맹을 흔들고, 균열을 초래하면서까지 시행할 가치가 없는 지엽적인 사항에 매달린 셈이다. 정부의 개별 북한 관광 추진에 미국은 세컨더리 보이콧 가능성까지 경고하고 있다.

김정은이 화답할 가능성도 작아 보이지만, 설령 그런다고 해도 핵보유국 공인을 받기 위한 시간벌기용이다. 문 대통령 말대로 시간이 없다.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은 2월부터 민주당, 공화당의 전국 순회 코커스·프라이머리가 본격화한다. 8월 대선 후보가 결정되면 말 그대로 다른 데 신경 쓸 여유가 없는 대선전을 치른다. 짧게 잡으면 한 달여 남았고, 길게 잡아도 반년밖에 안 남았다.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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