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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 김효순 지음／ 서해문집

일본이 패망한 1945년 8월 중국의 동북 3성(옛 만주)과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에 체포돼 시베리아의 수용소를 전전하다가 1950년 7월 중국에 인도돼 푸순전범관리소에 수감된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10여 년이 흐른 1954년부터 1000여 명에 이르는 수감자가 일본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침략 정책의 충실한 입안자와 집행자였던 이들은 일본에서 자신이 저지른 죄악을 반성하고 침략전쟁의 진실을 증언하며 반전평화운동에 앞장섰다.

1964년 4월 귀국한 마지막 전범 3인 중의 하나인 사이토 요시오 전 만주국 헌병훈련처 처장은 훗날 수기에서 “중국 대륙에서 전쟁범죄를 거듭한 12년 4개월 동안 ‘귀신’이었다면, 패전 후 복역 기간을 거쳐 마침내 ‘선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밝혔다. 도대체 푸순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푸순의 기적’이란 무엇인가?

푸순전범관리소에 수감된 육군 중장 5명을 포함한 일본 전범은 첫날부터 시베리아 억류 시절과는 전혀 딴판의 처우에 놀랐다. 시베리아에서는 검은 빵만 먹었던 이들에게 흰 빵과 쌀밥이 나왔다. 수감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정작 전범관리소 직원들은 수수밥을, 그것도 하루 두 끼만 먹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여기에는 일본 전범 개조정책을 지휘한 당시 저우언라이 총리의 ‘이해 못 할 지시’가 배경에 있었다. 그는 ‘전범의 인격을 존중하라’ ‘절대로 구타하거나 욕하지 마라’ ‘일본인의 습관을 존중하라’고 엄명을 내렸다. 그 같은 처우와 함께 이들을 개조시키기 위한 학습운동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신중국의 정책에 호기심이 발동한 전범들은 토론을 통해 점진적으로 일본 군국주의의 실체를 깨닫게 된다. 또 자신의 처지를 객관적으로 보면서 감방 안에서는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진심으로 반성하고 죄를 인정하는 ‘인죄’의 길을 가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게 됐다.

그들은 귀국 후 ‘중국 귀환자 연락회’를 결성하고 “침략전쟁이야말로 일부 지배자의 야망에 의한 것임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침략전쟁은 이제 절대 반대입니다”라고 외쳤다.

그들은 일본 곳곳을 누비며 침략전쟁의 만행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여성국제전범법정에 나와 위안소 운영을 폭로한 2명의 증인도 ‘연락회’ 회원이었다. 피해자의 용서를 구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도미나가 쇼조, 자신이 체포해 죽인 항일열사의 딸을 찾아가 사죄한 쓰치야 요시오. 731부대 만행을 증언하러 미국에 입국하려다 거부된 시노즈카 요시오 등이 모두 회원이다.

지금 그들은 ‘푸순의 기적을 이어가는 모임’을 결성해 인류문화유산으로 삼아야 한다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452쪽, 1만9500원.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