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기록 모아 ‘소헌집’ 책 만들어 제사때 읽으며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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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교 (1931~2011)

8년 전 11월의 어느 날, 오랜 병환 끝에 주무시듯 그렇게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나는 삶이 힘들어지거나 천지간에 나 홀로인 외로움을 느낄 때 문득문득 어머님이 보고파진다. 어느 어머니인들 애달프지 아니하랴마는 나의 경우는 많이 특별하다.

스물하나 꽃다운 나이에 청상(靑孀)이 되시어 혈혈단신 보따리 이고 서울로 와 터전을 마련하셨고, 스물다섯 살 때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삼촌 모두 서울로 모아 한 가정의 가장이 되셨다. 온 가족이 삯바느질에 매달려 삼촌, 고모를 학교에 보내고 나를 교육시키는,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이었지만 늘 희망을 잃지 않으셨다. 이런 어머니의 기록을 모아 ‘소헌집’이라 이름 붙인 책을 만들었다. 그것이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도리요, 한집안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 믿었다.

무엇이 어머니로 하여금 이 면면한 기록들을 이리도 절절히 만들게 했을까? 곤궁하고 파란만장했던 일생을 망각하기엔 당신의 삶이 너무도 기구하고 원통하셨음일까? 잠재한 문학에의 열정이었을까? 감히 나는 그것은 사랑이요, 용서요, 끝없는 아버님에게의 귀의였다 말하겠다.

그리하여 어머니 제사에는 ‘維歲次干支某月干支朔某日干支孝子 …’ 대신 소헌집을 읽어드리고 있다. 아들이 읽는 소헌집을 듣고 있자니 모두가 숙연해 어머니 생각 가득했으니 그 어떤 제문보다도 뜻깊다 하겠다. 그 글 속에, 그 기억 속에 어머니가 살아계심을 느끼니 다시 한 번 기록의 위대함을 알겠다. 비록 알아듣지 못하는 어린 것들도 먼 훗날 제 부모 통해 이 이야기를 들을 것이니 가족의 역사는 이렇게 또 면면히 이어질 것이다.

어머니와 아내는 참으로 각별했고 나는 그 덕분에 집안 걱정하지 않고 일에 전념해 그나마 아직껏 이름 석 자 잘 보전하며 살고 있다. 같은 여자, 같은 남자를 세 번 선보고 홀어머니의 외아들, 찢어지는 가난, 참 결혼하기 어려운 조건이었지만 어머니 덕분에 우리는 결혼할 수 있었다. ‘어머니, 왜 어머니는 제게 늘 이렇게 가슴 아픈 존재이십니까?’하며 아내는 어머니를 그린다. 나의 기억 속에 어머니는 늘 어머니셨고, 집사람은 늘 다소곳하고 아름다운 며느리였다. 오늘 곡우에 가슴 깊은 이야기를 듣노라니 눈물이 난다.

전생과 지금의 인이 다음의 과가 되는 것이니, 원수에게도 사랑을 베풀고 선연의 씨를 뿌리라는 그 말이 참 와 닿는 밤이다. 어머니의 절절한 사랑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사랑임을 안다. 이런 날이 살면서 과연 얼마이겠는가? “이제 어머니는 좋은 곳에 가실 거예요. 더 이상 가슴 아파 하지 마세요.” 아내의 어머니에 대한 추모로 그리움은 더욱 깊어진다. 아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아들 권대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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