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해 최정(가운데)의 자유계약(FA) 협상이 끝난 뒤 최인국(왼쪽) 에이전시 스포스타즈 대표, 손차훈 SK 단장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정은 6년간 총액 106억 원에 계약했다. SK 제공

- 선수 84% “대리인 없어”… 스타급 선수만 “혜택 만족”

3차례 시험 158명 자격 획득
法관련 과목 많아 합격 어려워
변호사 65명 - 선수출신 1명뿐

KBO 경기장 출입증 발급 안해
선수와 직접 접촉 기회 제한적
계약 1건 없는 에이전트 태반

프로야구 에이전트 제도는 속 빈 강정에 비유된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지난해 2월 에이전트 제도를 도입했다. 2017년 12월 1회 KBO 공인 에이전트 자격시험을 치렀고, 92명이 합격했다. 에이전트 자격시험은 올해 12월까지 총 3차례 실시됐고 2차 35명, 3차 26명 등 총 153명이 자격증을 획득해 공인 에이전트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KBO 에이전트 시험 합격자 중 절반에 가까운 65명(42.5%)이 변호사다. 반면 선수 출신은 1명뿐이다. 변호사가 프로야구 에이전트의 주류가 된 건 물론 이유가 있다. 시험 과목이 까다롭고 난도가 높기 때문. 법 관련 과목이 많기에 ‘진입 장벽’인 셈.

한 에이전트는 “법 전문가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구조”라고 밝혔다. 공인 에이전트 시험 과목은 △KBO리그 대리인 규정과 표준 선수대리인 계약서 △KBO 규약과 야구선수 계약서·협정서 △KBO리그 규정(야구 배트·국가대표 운영·상벌위원회) △프로스포츠 도핑 규정과 국민체육진흥법 및 계약법으로 나뉜다. 400점 만점이며, 과목별로 60점 이상 취득해야 합격이다. 평균 60점 이상이라고 하더라도 일부 과목이 60점 미만이면 불합격이다.

에이전트 시장은 그리고 ‘독과점’이다. 선수를 대리하는 에이전트는 153명 중 24.2%인 37명이다. 스타급과 친분을 나누는 소수의 에이전트가 시장을 좌지우지한다.

편법도 용인 된다. 개인인 에이전트 1명이 선수 3명을 대리할 수 있고, 회사인 에이전시는 15명까지다. 그런데 일부 에이전시는 자유계약(FA) 협상이 종료되면, 해당 선수와 위장으로 ‘결별’하고 매니지먼트는 담당하면서 관계를 이어간다. 스타급 사이에서 에이전트 만족도가 높은 이유. 하지만 스타급이 아니라면 에이전트 시장에서 외면당한다. 에이전트의 도움을 받고 있는 선수는 109명. 10개 구단이니 팀별로 11명이란 계산이 나온다. 올 시즌 등록선수가 모두 664명이니 에이전트가 뒤를 봐주는 건 16.4%에 그친다.

에이전트의 사명감, 전문성 결여도 문제로 지적된다. 올겨울 대형 FA를 대리하는 에이전트 A는 구설에 올랐다. 원소속 구단과의 협상 내용을 자신의 SNS에 올렸고, 이 내용은 온라인상에서 빠르게 전파됐다. A의 성급함과 일방적인 행동에 원소속 구단은 실망했고, 협상은 진척되지 않아 해당 선수는 구단에 협상 전권을 넘겼다.

역시 FA 자격을 얻은 선수 B는 갑자기 에이전트가 바뀌어 당황했다. 자신의 전담 에이전트가 다른 선수의 계약에 주력했고 그 에이전트는 B 선수에 대한 권리를 포기했다. B 선수와의 협상을 진행하던 구단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B 선수는 또 다른 에이전트를 선임했지만, 본인이 직접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에이전트의 활동에 제약이 따르는 것도 에이전트 제도의 정착을 방해한다. 2017년 에이전트가 된 C는 해가 바뀌면 자격증을 반납해야 할지도 모른다. C는 유명 에이전시 소속이었지만, 회사가 야구 관련 매니지먼트에서 철수하면서 보직을 잃었고 실적을 올리지 못했다.

KBO 공인 에이전트 자격은 2년마다 재심사를 받는다. 2년 안에 선수와 대리인 계약을 맺지 못하면 에이전트 자격은 취소된다.

KBO는 에이전트에게 경기장 출입증을 발급하지 않고 있다. KBO와 10개 구단은 에이전트의 출입증 발급에 여전히 부정적이다. 경기장에 출입할 수 없기에 에이전트가 선수와 만나 소통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에이전트 자격증을 획득했다가 중도에 다른 길로 돌아서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 원로 야구인은 “예전부터 미국에선 변호사 의존도가 높았기에 메이저리그에서 대리인에 대한 거부감이 없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면서 “프로야구 에이전트 제도가 정부의 입김에 의해 갑작스럽게 도입됐기에 국내에 정착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세영 기자 niners@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