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병직 논설위원

국내 게임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설립된 사단법인인 한국게임학회는 최근 외교부를 상대로 성명서 하나를 내놨다. 요지는 “한국 게임에 대한 중국 정부의 차별에 외교부가 어떤 견해와 대응책을 갖고 있는지 밝혀달라”는 것이다. 얘기는 이렇다. 중국 내에서 외국업체가 게임 콘텐츠를 유통시키려면 당(黨) 중앙선전부가 발급하는 게임 서비스 허가증인 ‘판호’를 반드시 발급받아야 한다. 그런데 지난 2016년 한국 정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에 따라 불거진 한한령(限韓令) 여파로 2017년 4월 이후 한국 게임업체는 단 한 건의 판호도 발급받지 못했다. 중국은 이 기간 다른 나라 업체에는 526건의 판호를 내주면서도 한국만 쏙 뺐던 것. 그런데도 중국 업체들은 주52시간제 여파로 한국 게임업계가 위축된 틈을 타 한국 시장 진출을 강화하면서 국내 게임시장을 휘젓고 있다.

이렇다 보니 게임업계는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우리 정부도 중국 게임업체의 한국 진입을 통제하든지,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든지, 그것도 힘들면 중국 정부에 항의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그러나 정부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자 이에 대한 불만을 이번 성명으로 공개 표출한 것이다. 일본이 반도체 부품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자 문재인 정부는 이를 WTO에 제소하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폐기로 맞설 만큼 단호히 대응하는 결기를 보여줬다. 그런데 일본에는 성난 호랑이처럼 용맹한 문 정부가 웬일인지 중국 앞에만 가면 순한 양이 된다.

그러잖아도 주52시간제 충격으로 올해 엔씨소프트·넷마블·넥슨 등 국내 대형 게임사의 신작 출시 물량이 전년 대비 30% 이상 급감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 2017년 20.6%에 달했던 한국 게임산업 성장세가 올해는 중국·근무시간발 악재까지 겹쳐 5%대로 주저앉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문 대통령은 얼마 전 ‘콘텐츠산업 3대 전략 발표회’에 참석해 게임업계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콘텐츠는 문화를 넘어 한국 경제를 살리는 미래 먹거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23일 베이징에서 한·중 정상회담이 있었다는데 한국게임 차별에 대한 언급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한국 게임을 원천봉쇄하는 중국을 향해 문 정부가 NO라고 말해주길 기대하는 건 지나친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