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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겸 동국대 교수·헌법학

지금 우리 사회는 나라가 두 동강 난 것처럼 서로 다른 집회와 시위로 대립과 분열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민주주의는 표현의 자유를 통해 실현되고 다양한 의견이 민주주의를 만든다고 하지만, 집회와 시위가 법을 준수하고 평화롭게 진행돼야 민주주의가 실현된다. 독일 헌법은 무기 없는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를 보장한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는 참가자들과 경찰이 충돌하는 일이 빈번하다.

지난 주말에도 서울 도심 곳곳에서 집회가 있었다. 검찰 개혁 등을 요구하는 진보 성향의 촛불집회, 노동법 개정에 반대하는 전국민중대회, 현 정부를 규탄하는 보수 성향 단체의 집회 등 크고 작은 집회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더구나 진보 단체들이 지난달 30일 개최한 ‘2019 전국민중대회’에서는 주한 미국대사관에 신발을 집어던지고 집회에 허용되지 않은 횃불을 들고 청와대로 행진하다가 이를 저지하는 경찰과 충돌했다.

국민의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 하지만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철저하고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야 한다. 그런데 집회·시위 현장의 모습은 민주적으로도 법치적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지난 주말 민중대회에서도 불법행위자들은 경찰의 공권력 행사에 대항하면서 법치를 파괴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물론 여기에는 경찰이 과잉진압 논란을 피하려고 소극적으로 대응한 측면도 있다.

집회 현장에 출동하는 경찰은 기본적으로 진압용 장비와 보호 장구를 휴대한다. 경찰은 위해성 경찰 장비의 사용 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필요 최소한의 범위에서 장비를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집회·시위에서 폭력 등 불법행위가 발생하면 현행범으로 체포하도록 하는 지침도 있다. 하지만 이번 진보단체의 집회에서 보듯이 허용되지 않은 횃불을 사용하면서 소화 조치를 방해했고, 미국 대사관에 신발 등을 던지는 불법행위에도 단 한 명도 현행범으로 체포하지 않았다.

불법집회에 대한 경찰의 미온적 대응을 비판할 때마다, 경찰은 현장에서 강제 연행하는 경우 시위대를 자극해 충돌이 커질 수 있어서 사후 채증 등을 통해 철저하게 수사해 불법행위자를 사법처리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불법행위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체포하지 못하고 대부분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이들을 사후에 신원 파악해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이러니 공권력은 추락하고 불신을 받는다.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 질서유지는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법질서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엄정하게 공권력이 행사돼야 한다. 경찰이 공권력 행사에 정치적 고려를 한다면 집회의 불법행위자에 대해 적법하게 대응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경찰의 적법한 진압 행위를 과잉진압이라고 보고 불신하게 되면 경찰의 대응은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경찰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 보호와 사회 공공의 질서유지를 위해 주어진 책무를 수행하려면 스스로 노력해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경찰이 정치적으로 좌고우면하지 않고 적법하고 엄정하게 공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과거보다 폭력·과격 시위가 줄었다지만, 불법 집회·시위 현장에서 부상당하는 경찰의 수는 그리 줄지 않고 있다. 집회·시위 현장에서 불법행위를 진압하는 경찰을 공격하는 것은 법질서를 파괴하는 범죄행위다. 법치 확립을 위해서는 국민의 준법 의지가 필수지만, 경찰의 공정하고 엄격한 공권력 행사 의지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