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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박근혜 정권이 결정적으로 몰락하기 시작한 출발점은 대체로 2014년 말 ‘정윤회 문건’ 사건을 꼽는다. 최서원(최순실) 씨 남편인 정윤회 씨, 그리고 이재만·안봉근·정호성 비서관을 지칭하는 ‘문고리 3인방’ 등이 강남의 한 중국집에서 자주 어울리며 국정·인사를 논의했다는 내용의 문건이 발단이다. 이 그룹은 중국 후한 말 영제(靈帝) 때에 정권을 잡아 조정을 농락한 10여 명의 환관 즉, 십상시(十常侍)에 비유됐다. 이 문건을 작성한 인물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일했던 경찰 출신 박관천 경정이고, 상급자는 현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인 조응천 비서관이었다.

이 문건 파문은 민정수석실 내 민정비서관실과 공직기강비서관실의 힘겨루기가 불거진 것으로, 문고리 3인방을 내세운 정 씨와 박지만 씨의 대리전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문건의 진위보다 유출 경위를 문제 삼으며 ‘국기 문란’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박 전 경정이 구속되는 등 결국 문고리들의 승리로 돌아갔다. 이 과정에 민정수석실에 파견 나가 있던 최모 경위가 문건 유출 의혹을 받고 수사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 정권 2년 차에 벌어진 이 사건은, 지금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김기현 전 울산시장 하명(下命) 수사 의혹 사건 및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사건과 판박이다. 등장 인물만 다를 뿐 ‘십상시 시즌 2’인 셈이다. 중국집은 아니지만 유 전 부시장과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김경수 경남도지사, 천경득 선임행정관 등이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의견을 수시로 나눴다는 증거까지 나온 상황이다. 재선 의원 출신이자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이 임명될 때부터 이런 사태에 대한 우려가 여권 내에서 파다했다.

조국 전 수석은 빛나는 일만 하지 ‘공작(工作)’은 백 전 비서관이 주도했다고 보는 의혹이 많다. 민정수석실은 경찰과 검찰, 국세청, 금융감독원 공무원들에게는 고속 승진의 기회이기 때문에 줄을 대서라도 가고 싶은 곳이다. 민정비서관실에서 ‘백원우 별동대’ 역할을 했다는 검찰 수사관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도 권력의 압박 때문일 것이란 추정이 합리적이다. 국정 운영 방식을 고집했기 때문에 ‘십상시 시즌 1’은 탄핵으로 이어졌다. 이것을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시즌 2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