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성북구 길음동 길원초등학교 도서실 ‘북적북적 으뜸이꿈터’에서 이 학교 학생들이 자유롭게 독서를 즐기고 있다. 김낙중 기자

⑤ 틀에 박힌 도서관·놀이터 싫어요

길원초 ‘북적북적 으뜸이꿈터’
나무색 기둥에 초록빛깔 천장
창고 같던 과거 이미지서 탈피

좌식으로 둘러앉는 탁자부터
재밌는 공간에 원형의자까지
자유로운 독서 분위기 만들어

푸른 숲 속에서 책과 함께 뛰노는 아이들. 서울 성북구 길음동 길원초등학교 도서실 ‘북적북적 으뜸이꿈터’에 들어섰을 때 첫눈에 들어온 풍경이다.

건물을 떠받치는 도서실 한가운데 기둥은 그대로 연갈색 나무 기둥이 됐고, 천장은 무성한 나뭇잎처럼 아이들을 품 안에 덮어주고 있었다. 창문 너머에서 비치는 환한 햇살이 얼굴을 어루만지는 것도 잊은 채 아이들은 창가에서, 넓은 책상에서, 바닥에서 제각기 책에 열중해 있었다.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알록달록한 공간에서 책을 펴둔 채 이야기꽃을 피우는 아이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도서실 한쪽을 바라보면 젊은 대학생들이 찾는 북 카페 같았고, 고개를 들어 다른 쪽을 바라보면 키즈카페나 놀이터 같은 느낌도 들었다.

“나무색과 초록색을 기본으로 써서 아이들이 편안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하면서도, 다양한 색감으로 생동감 있고 흥미로운 공간을 연출하고자 했습니다.” 도서실을 설계한 이근훤(38) 온유건축사사무소 차장의 설명이다.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이 있다는 이 차장은 “아이가 책을 좋아해, 다니는 학교에서 도서실을 자주 이용하는 것 같더라”며 “우리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 도서실을 이용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며 그대로 구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도서실에선 이 차장 아들 또래의 초등학생들이 곳곳에서 책장을 넘기며 책의 친구가 되고 있었다. 수영장처럼 안이 움푹 팬 원형 공간 안에 들어가 그림책 ‘엉덩이 탐정’을 읽던 최은서(7) 양이 “도서실이 넓어지고 새로워진 것 같다”며 눈을 반짝이자, ‘커다란 착한 늑대’를 읽던 친구 김서은(7) 양도 “더 자주 오게 된다”며 맞장구를 쳤다.

이미지 크게보기 길원초등학교 학생들이 도서실 내 ‘도란도란서가’와 ‘꿈나무서가’에 둘러앉아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다. 김낙중 기자

많은 성인의 기억 속에서 초등학교 도서실은 낡은 책들로 둘러싸인 조용하고 어두컴컴한 공간, 소수의 책벌레를 제외하면 학생들이 잘 찾지 않는 공간으로 남아 있다. 길원초 도서실도 지난 1학기까진 그런 모습이었다. 이 학교 6학년 담임 유정수(39) 교사는 “도서실이 낙후되고 학생 수 대비 공간이 협소해, 강북교육지원청의 지원 절차를 거쳐 지난 여름방학 중 약 40일 동안 공사를 진행했다”며 “학교 자체적으로도 교사 9명으로 구성된 도서실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설계팀과 논의를 진행했고, 다른 학교의 사례도 참고했다”고 소개했다. ‘북적북적 으뜸이꿈터’란 이름은 책(북·book)이 쌓인(적·積) 곳에서 이 학교 상징인 ‘으뜸이’들이 꿈을 찾는다는 뜻.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공모를 거쳤고, 학생들의 투표를 거쳐 선정됐다.

새로 바뀐 도서실은 공간을 다양한 형태로 배치해 학생들이 책에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넓은 책상에 둘러앉아 책을 읽는 ‘꿈나무서가’, 창가에서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는 ‘햇살서가’, 신발을 벗고 올라가는 좌식 공간인 ‘이야기서가’와 ‘오름서가’,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도란도란서가’, 꽂혀있는 책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벌집서가’ 등으로 구성됐다. 정자세로 책상에 앉아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누워서도, 서서도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이다. 아이들이 책을 읽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예전과는 달라진 풍경이다. ‘아빠를 주문했다’란 동화를 읽던 5학년 정지윤(11) 양은 “예전에는 소리 내어 이야기하기 민망한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읽고 있는 책에 대해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라며 웃었다.

도서실이 바뀌고 나니 아이들이 책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유 교사는 “아이들이 도서실 오는 표정이 바뀌었다”며 “너무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표정이고, 평소에도 다들 국어 과목과 연계된 도서실 수업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한 번에 두세 개 학급이 한꺼번에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도서관 크기도 커져, 전교생이 적어도 2주마다 한 번 이상은 도서실을 이용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학생들에게 인문학 교육, 독서 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것이 유 교사의 설명이다. 허진경(여·47) 사서 교사도 “예전에는 좁아서 책이 아이들 시야에 보이지 않았는데, 넓은 서가 공간이 펼쳐지면서 아이들이 책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고 말했다. ‘살아있는 화석’이란 책을 펼쳐놓고 골똘히 읽던 5학년 장우혁(11) 군은 “과학을 좋아하고, 책을 통해 과학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흥미롭다”며 “나중에도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유 교사는 “학교에도 잘 찾아보면 잘 활용되지 않는 공간, 교육적 활동을 할 수 없는 ‘죽은 공간’이 있다”며 “공간 혁신을 통해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공간을 새로 만들어주게 됐다”며 뿌듯함을 나타냈다.

조재연 기자 jaeye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