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폐기 결정 유예 조치로 일단 외교적 파국을 피했지만, 지소미아 파동의 근본 원인인 강제징용 판결 갈등은 그대로여서 여전히 시한폭탄이 째깍거리는 양상이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일본기업 자산 매각(현금화) 절차가 곧 개시되면 한·일 관계는 루비콘 강을 건너게 된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강제 동원 희생자 지원 특별법’ 발의를 서두르는 것도 그 뇌관인 징용문제를 어떻게든 풀어야 한다는 의지로 보인다.

이른바 문희상 안(案)의 핵심은 소송을 제기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한·일 기업 기부금(1+1) 및 국민 성금(α)으로 위자료를 지급하자는 ‘1+1+α’ 방안이다. 문 의장은 지난 5일 와세다대 강연에서 국회의 선제적 입법 의지를 밝히면서 이 같은 안을 공개했다. 이것은 박근혜 정부 때 ‘위안부 합의’보다 훨씬 후퇴한 안이다. 정부 책임이 빠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징용 문제를 둘러싸고 한·일 갈등이 최악 상태로 빠지는 것은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차악(次惡)’이다. 징용 갈등의 출구전략이라 할 만하다. 기업·민간 성금으로 재원을 조성해 배상 아닌 위자료 명목으로 보상하자는 것은 1965년 청구권협정 틀을 지키기 위한 고육책일 수 있다. 문 의장이 “한국 정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을 존중한다”고 밝힌 것과도 맥이 닿는 것이다.

문 의장이 특별법으로라도 징용 갈등을 풀자는 것은 북핵 및 경제 위기 앞에서 한·일 협력이 긴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문 정부도 또다시 반일감정을 부추기지 말고, 이것이라도 성사시켜 문제를 풀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문 대통령은 내달 하순 청두 한·중·일 정상회의 때 열리는 한·일 정상회담에서 1965 체제 준수 천명과 함께 징용 문제를 타결함으로써 일거에 관계 정상화를 이뤄내야 한다. 이에 앞서 문 대통령이 진정성 있는 자세로 징용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설득해야겠지만, 극단적 반일 단체들에 휘둘려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