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부 접경지역인 황해남도 창린도의 방어부대에서 포 사격 훈련을 참관한 뒤 군인들에게 하사품으로 자동소총을 건네는 모습을 조선중앙TV가 25일 방영했다. 작은 사진은 이 방어부대가 당시 사격 훈련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KS-12 85㎜ 대공포 모습. 연합뉴스

- 남북 군사합의 ‘태생적 한계’

北 해안포 사격, 합의위반 명백
南선 유감표명·통지문 전달뿐
이행점검 공동위 구성조차못해

당국, 對北전력·공중감시 축소
北 포병전력 위험에 노출시켜

전문가 “유명무실한 합의” 비판

북한이 최근 서해 접경지역 창린도에서 해안포 사격 훈련을 하며 ‘9·19 남북군사합의’를 위반했지만, 한국 측은 합의에 얽매여 군사분계선 일대의 전력을 줄이며 스스로 손발을 묶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북한의 군사합의 위반에도 불구하고 합의서 내에는 재발방지 대책도 포함되지 않아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정부의 설명과 달리 유명무실한 합의란 비판이 일고 있다.

26일 외교안보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난해 9월 평양에서 남북은 군사합의를 통해 지상과 해상, 공중, 비무장지대(DMZ)에서 충돌의 원인이 되는 전력 기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한국은 공중 감시 전력 기동을 금지하고, DMZ 내 감시초소(GP)를 축소하는 등 대북 전력을 상당히 축소했다. 남북은 상호 1㎞ 내 근접 GP를 철수시켰지만 ‘동수(同數) 철수’ 원칙이 적용돼 북한에 비해 GP 수가 3분의 1인 상황에서 동수로 줄이는 바람에 한국 측의 전력 손실이 더 크다.

공중 감시 자산은 군사분계선 기준으로 서부 지역은 20㎞, 동부지역은 40㎞까지 띄울 수 없게 했다. 이것은 북한의 포병 전력이 전방에 집중 배치돼 있는 점을 감안하면 서울 등 수도권까지 무방비로 위험에 노출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북한의 포병 화력 동향을 집중 감시해야 할 군단·사단급 정찰기들은 단거리에서 이들을 감시하는 데 한계가 있다. 한국군이 군사합의에 얽매이다 보니 실전과 같은 훈련을 도외시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받고 있다. 백령도·연평도에 주둔 중인 해병대는 신형 K-9 자주포를 보유하고 있지만 해안포 사격이 금지돼 육지인 경기 파주 훈련장까지 나와 포 사격 훈련을 벌이고 있으며, 훈련 숫자도 크게 줄이는 추세다.

9·19 남북군사합의는 한국군 전력을 위축시켰다는 지적과 함께 북한의 불이행에도 마땅한 재발방지 대책이 수반되지 않았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지난해 9월 당시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군사합의에 서명한 이후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강조하며 ‘9·19 남북군사합의’가 지켜지고 있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합의서 곳곳에 북한이 불이행을 해도 빠져나갈 빈틈이 여러 곳 존재한다.

군사합의에 따르면 양측은 대규모 군사훈련 및 무력증강 문제 등에 대해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하기로 합의했지만 현재까지 공동위원회는 꾸려지지 않고 있다. 남북은 당초 차관급을 위원장으로 하는 군사공동위원회를 구상했지만 북한이 호응하지 않는 상태다. 특히 양측은 군사합의 5조 3항을 통해 “남북군사 당국 간 채택한 모든 합의를 철저히 이행하며, 그 이행상태를 정기적으로 점검 평가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합의서에 대한 정기적 점검 및 평가 방식에 대해서는 구체화하지 않았다. 북한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아도 군 당국 차원의 유감 표명과 통지문 전달 외에는 대응 수단이 없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를 통해 “북한의 군사합의 위반은 누구도 부정 못 하는 사실이며 이제 휴지조각이 된 9·19 남북군사합의를 파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철순 기자 csjeong110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