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국민 70% “유지해야” 응답
日 96%가 긍정 응답…압도적
스페인은 37%가 “폐지”…최다

입헌군주제를 채택하는 국가에서 왕실은 국민의 광범위한 합의에 기초해 유지되고 있다. 논리상으로는 국민 다수가 왕실의 존속에 더 이상 동의하지 않는다면 입헌군주정이 폐지되고 공화정이 수립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이 같은 이유로 민주주의 체제에서 국가수반으로서의 형식적인 권한만 가지며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는 왕실은 국민 여론을 살필 수밖에 없다.

일부 왕실이 자발적으로 구성원 규모나 예산을 줄이겠다고 선언하는 이유다. 지난달 7일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은 손주 5명을 ‘왕실 호적’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 왕위 계승자 빅토리아 왕세녀(42)의 1남 1녀만 왕손 직함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국왕의 나머지 손주들은 왕족 직함을 사용하지 않고 왕가의 일원에게 주어지던 봉급을 수령할 수 있는 자격도 잃게 된다. 스웨덴 왕실이 국민의 세금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시각을 반영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왕실 의전을 위한 과도한 예산 등에 따라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수용적인 자세를 보였다.

왕실 유지 여부에 대한 최근 설문조사로는 지난 4일 영국 일간 메트로가 여론조사기관 퍼블릭퍼스트에 의뢰해 실시한 결과가 있다.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70%,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은 19%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는 대개 상징적 왕의 존재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왕조 대부분은 통치권을 행사하지 않아 일반 국민의 경제활동이나 일상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계돼 있지 않다는 점도 작용한다.

지난해 5월 여론조사기관 입소스 모리가 입헌군주국 8개국을 대상으로 자국의 왕실을 폐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조사 결과도 흐름상 비슷하다. 스웨덴, 말레이시아, 벨기에에서는 각각 전체의 23%, 18%, 17% 정도만이 군주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영국과 더불어 엘리자베스 2세가 군주인 캐나다와 호주는 모두 15%가 왕실 폐지 입장에 찬성했다. 일본은 4%가 왕실 폐지에 동의해 가장 적은 수치를 나타냈다. 일본에서는 왕을 신적인 존재로 여겨온 관습이 있는 데다 천황제가 일본의 주류 토속 종교인 ‘신도’와 결합해 왕실은 국민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군주제 폐지 응답이 가장 높았던 나라는 스페인이었다. 37%가 폐지에 긍정적으로 답했다. 스페인 왕실은 전 국왕인 후안 카를로스 1세가 퇴임 전 금융위기 상황에서 호화 여행을 갔다는 사실이 알려져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정유정 기자 utoor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