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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운 논설위원

1992년 6월 3일, 빌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코미디언 아르세니오 홀이 진행하는 심야 TV쇼에 등장했다. 클린턴은 바로 전날 캘리포니아 경선에서 승리하면서 후보로 확정됐다. 당시에 대선 후보의 ‘토크 쇼’ 출연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정치·언론계 엘리트들은 ‘저속하다’며 못마땅한 반응을 보였다. 공화당의 상대 후보인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의 토리 클락 공보비서는 “보기에 민망하다”고 깎아내렸고, 저명한 여성 언론인 바버라 월터스도 “품위 없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워싱턴 주류 사회에선 ‘아칸소 촌놈’쯤으로 보였던 클린턴의 새로운 시도는 대중의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대선 승리로까지 이어졌다. ‘문제는 경제다,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구호와 함께 클린턴 당선의 1등 공신으로 꼽혔다. 이후 나이트 쇼 출연은 대선 후보들이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 코스가 됐다.

클린턴의 색소폰은 정밀한 기획의 산물이었다. 그해 5월부터 민주당 후보로는 유력해졌지만, 본선 경쟁자인 부시 대통령에 비해 신뢰도가 20%가량 낮았다. 대규모 TV 광고를 검토했지만, 자금이 부족했다. 경제·안보 등 정책 분야에서는 이미 똑똑한 것이 증명된 45세 후보의 인간미를 부각시키기 위해 당시로써는 ‘뉴 미디어’인 토크 쇼에 도전한 것이다. 영화 ‘블루스 브라더스’ 주인공처럼 까만 양복, 까만 선글라스 차림에 머리와 색소폰 색에 맞춰 화려한 금빛 넥타이를 맸다. 중·노년의 우상 엘비스 프레슬리의 ‘Heartbreak Hotel’과 청년층이 좋아하던 영국 그룹 웸의 ‘Careless Whisper’를 연주했다. 연주 실력 자체도 케니 G만큼 뛰어나 청중들은 열광했다. 그 자리에서 승리를 직감했다는 참모들도 있었다.

사족 하나. 클린턴의 연설문 작가는 임기 뒤 회고록에서 “색소폰 연주로 대통령이 됐는지는 모르지만, 대통령직(presidency)은 손상됐다”고 고백했다. 여러 의미를 담고 있지만, 인간적으로 너무 많은 것을 보여준 대통령은 실패하기 쉽다는 것.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1일 당 유튜브 채널 ‘오른 소리’에 출연해 색소폰을 연주했다. 클린턴을 떠올리게 한다. 청색 셔츠와 황토색 조끼를 입고 색소폰을 연주한 뒤 성장 과정, 정치 입문 계기 등도 소개했다. 황 대표는 어떤 전략으로 색소폰을 연주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