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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모 연세대 교수·경제학

우리나라 법률 중 정치적 선동에 따라 누더기가 된 게 많다. 모호한 법률로 인해 시행령과 지침이 위력을 발휘한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내놓은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행위 심사지침’은 공익을 침해하는 자의적 안(案)이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23조와 제23조의2에 열거된 규제 대상에는 ‘부당한’이란 용어가 들어간다. 시행령에서도 ‘부당한’ ‘현저한’ 또는 ‘부당하게’라는 형용사와 부사가 많이 나온다. 지침에서도 ‘상당히 유리한’ ‘합리적’이란 모호한 표현이 더 많아졌다. 지침은 자구 해석을 공정위의 몫으로 남김으로써 법에서 위임된 범위를 넘어 처벌할 수 있는 여지까지 만들었다.

일감 몰아주기 같은 규제는, 계약에 관한 기본적인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 나온 것이다. 기본적으로, 계약을 통해 특수한 의존성이 생겨난다. 예컨대, 어떤 기업에 특수 부품이 필요하다고 가정하자. 입찰을 통해 계약한다면 낙찰가는 단순히 비용만 고려한 가격보다 높게 설정된다. 입찰 기업들은 다른 곳에 팔 수도 없는 특수한 부품 개발에 들어간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물론 장기계약이라면 가격은 내려간다. 불확실한 시장 상황에서 장기 구매는 부담이 된다. 납품 회사가 가격을 올리면 구매 기업은 속수무책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로 신뢰할 수 있는 특수관계자가 기업을 만들어 납품하면 단가도 내려가고 장기계약을 한 것과 같은 효과가 난다. 자산 특수성을 극복하기 위한 효율적 행위가 규제되면서 모두가 피해를 보고 있다. 신생 기업이 계열사의 지원으로 세계로 성장할 기회마저 잃고 있다.

공정위의 지침은 기본적으로 부조리하다. 정상 가격을 도출하는 기준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구매자의 필요에 맞춰서 수시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정상 가격의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매몰비용도 고려돼야 한다. 지침에서 제공된 정상 가격 산정 기준은 맞춤복과 기성복의 가격이 같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불합리한 기준이다.

보안성·효율성·신속성의 기준도 모호하다. 보안의 개념은 첨단 기술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장사가 잘 되고 안 되고 하는 것 자체가 보안이다. 재고를 최소화하고 신속하게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입찰을 통해 부품을 조달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입찰해도 같은 조건으로 계약할 상황이라면 거래하던 곳과 거래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지분율 수준을 기준으로 규율하는 것도 불합리하다. 일반적으로 일감 몰아주기가 효율적 행위이므로 지분과 관계없이 허용돼야 한다. 횡령으로 규율해야 하는 경우도 제공 주체의 지분율보다 제공 객체의 지분율이 더 클 때만 성립한다. 따라서 특수관계인 규정은 강화 아니라 폐지해야 한다. 모법에 규정돼 있는 대상을 지침에서 제3자 및 간접지분까지 포함해 확대하는 건 월권이다. 또, 사업 기회의 제공에 관한 지침은 사업에 대한 이해 부족이 읽힌다. ‘상당한 이익이 될 사업 기회’가 내부에서 검토되면 다 성공할 수 있는가. 계열사로 사업을 수행하든지 사업을 이해한 특수관계인이 수행하는 게 당연하다. 이것이 어떤 공익을 침해하는가.

혁신에서 필요한 위험관리 수단을 우리 스스로 폐기하고 있다. 위험을 관리하는 기제가 없다면 경제가 성장할 수 없다. 공정위는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지침을 통해 뭘 얻으려는가. 명확한 기준이 마련돼야 국민이 준수할 수 있다.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 심사지침’을 폐기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