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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홍(1942∼2011)

아버지와의 추억이 많지는 않지만 야구장에 같이 갔던 기억은 생생합니다. 삼형제 중 형들은 학교에 가고 막내인 저만 데리고 야구장에 가셨죠. 그때는 사실 아버지보다 항상 TV에서만 보던 야구경기를 직접 본다는 설렘 때문에 제 기억 속에 선명히 자리 잡고 있었는데 시간이 흘러 아버지와 단둘이 갔던 그 추억에 더 그리워집니다.

예능인의 기질이 있으셨던 아버지는 북·장구는 물론 단소도 수준급으로 부셨죠. 하지만 가족보다 바깥일에 더 열중하셔서 어머니를 힘들게 했던 아버지. 그랬던 아버지는 어머니가 먼저 가신 후 외로움을 술로 달래셨죠. 그러다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고요. 아버지가 떠나시기 한두 달 전 요양병원에 계실 때 처음으로 아버지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나에겐 항상 강하고 엄하고 무서운 아버지인 줄만 알고 살아왔는데 어느새 당신은 인생의 고단함을 힘겹게 버티고 있는 연약한 노인이 돼 있었습니다.

제가 결혼을 하고 아버지는 유독 손주를 재촉하셨습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계셨던 걸까요? 살아계실 때 우리 예쁜 딸들을 못 보여드려서 항상 가슴 한쪽이 아려옵니다. 하늘에서 손녀들 잘 보고 계시지요?

지난번엔 모처럼 큰맘 먹고 우리 쌍둥이 딸을 데리고 벌초하러 갔습니다. 1년에 몇 번 찾아뵙지도 못하니 그렇게라도 우리 딸들 얼굴을 보여드리려고요. 그런데 둘째는 산모기에 물려 여기저기 퉁퉁 부어 고생한 후 할아버지 산소에는 다시 가고 싶지 않다네요. 사진 속에만 있는 할아버지의 이름을 자꾸 까먹는 우리 아이들처럼 저도 점점 아버지 모습을 잊어버리게 되네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편히 쉬세요.

막내아들 이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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