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국산 농작물에서 추출한 신소재들이 새로운 기능성 식품과 의약품 원료로 주목받고 있다. 농촌진흥청 연구원들이 삼채에서 기능성 성분을 추출하는 장면. 점선 원 안은 삼채 부위별 분말. 농진청 제공

연내‘기능성 평가시스템’도입
함량 표시 위한 지표 마련 계획

재배법·품질특성 등 DB 구축
연령별 질환 개선 소재 개발도

바이오·AI 등 미래기술 연계
미래 식품 산업 개척에도 박차

최근 농촌진흥청은 감귤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파악했다. 제주대와 공동연구를 통해 감귤 추출물이 인지능력 향상에 매우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국민이 즐겨 먹는 대표적 국산 과일인 감귤이 사람의 뇌 기능을 활성화하는 기능을 갖고 있음을 과학적으로 처음 규명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실험 과정에서 감귤 추출물을 생쥐에게 투입한 결과, 쥐의 사물 인지 능력이 다른 쥐의 50%나 향상된 것으로 나타나는 등 평소 우리가 알던 ‘비타민C’ 감귤의 기능을 넘어섰다. 평범한 식품에 불과했던 감귤이 이젠 사람의 두뇌 기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효능을 지닌 기능성 물질로 재탄생한 셈이다.

농작물에서 천연재료를 추출·규명해 새로운 소재를 만드는 기능성 식품 원료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이를 바탕으로 한 건강기능식품 산업도 급성장하는 추세다. 사람의 기대수명이 평균 82.4세인 반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수명은 64.9세(2016년 기준)다. 건강하지 못한 상태에서 17.5년이나 더 사는 것을 바라는 사람은 없다. 이 같은 원초적인 소비자의 욕구는 건강기능식품 시장을 급격히 키우고 있다. 2017년 국내 건강기능식품 시장 규모는 2조7000억 원으로, 2011년 1조7000억 원 이후 연평균 8.2%씩 성장하고 있다.

소비자의 요구와 기호에 맞춘 다양한 건강기능식품들도 매년 새롭게 등장한다. 전 세계적으로도 농산물에서 뽑아낸 기능성 소재에 대한 연구·개발(R&D)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나고야(名古屋) 의정서 채택 이후 세계 각국은 생물자원 주권화를 가속화하며 이 같은 원료·소재에 대해서도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독자적인 개발 없이는 이 같은 건강기능식품을 만드는 데도 큰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건강기능식품 원료의 대다수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국산 농산물의 품질 표준화와 그 효능 근거가 부족해 소재화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2004~2016년까지 개별인정형 원료, 즉 기능성 식품을 만들 수 있는 원료 581건 가운데 국내산은 167건(29%)에 불과하다.

이에 국내 최대 농업 R&D기관인 농진청은 고부가가치 농업을 위해 기능성 원료 확보와 함께 시장 육성을 위한 기초적인 틀을 만드는 데 힘쓰고 있다. 농진청은 기능성 식품산업 활성화를 위한 기초기술 및 실용화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기능성 소재 농산물의 기능성분·제조공정 표준화 △기능성 평가 시스템 개발 및 생애주기 맞춤형 소재화 △차세대 유망 소재의 현장 활용성 증진 연구를 올해 중점 추진과제로 설정했다.

먼저 기능성분·제조공정 표준화는 말 그대로 기준을 만드는 일이다. 그간 국내에서는 농산물 기능성분 함량 표시를 위한 원료의 정보나 지표가 없었다. 우리나라는 올해부터 식품 기능성 표시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일본의 경우 2015년부터 사업자의 책임 아래 식품(신선식품 포함)의 기능성 표시를 허용, 이를 시행하고 있다. 이에 농진청은 올해 안에 국산 기능성 농산물의 지표성분 및 함량 기준을 설정할 계획이다. 오미자, 더덕 등 국산 농산물을 정밀 분석법을 이용해 성분 프로파일링을 하는 한편, 권역별로 주산단지에서 시료를 수집, 검증 및 정량 분석을 통해 지표성분 함량 기준도 만들 예정이다. 기능성 농산물 소재 원료 데이터베이스도 구축해 주산단지나 재배법, 품질특성 등에 대한 정보도 갖춘다.

원료가 지닌 기능성을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이를 소비자의 나이에 맞게 만드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생애주기별로 나타나는 질환에 대한 예방과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소재 발굴 연구가 매우 필요한 상황이다. 지금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전체 인구에서 14%(2017년)를 차지하지만 2050년에는 39%까지 이를 전망이다. 50대 이상 연령층의 50%가 관절염으로 고생하고 있으며, 65세 이상의 10%, 85세 이상의 약 50%가 치매로 고통받고 있다. 중장년, 청년, 유아기에 나타나는 질환과 이를 예방·개선할 수 있는 소재 발굴이 시급하다. 농진청은 이 같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올해 안에 생애주기별 질환 개선 소재 발굴을 위한 평가법을 개발해 적용단계에 들어갈 예정이다. 현재 노년층에서 자주 나타나는 치매 질환을 없애고 인지능을 개선할 수 있는 ‘삼채(蔘菜)’와 같은 작물(소재)을 발굴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삼채는 혈당과 체지방을 낮추고 뼈를 튼튼하게 할 뿐만 아니라 가금류의 면역 조절에 효과가 있는데, 농진청은 미국 농무부 농업연구청과 공동연구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규명했다.

기능성 작물에 대한 연구는 미래 기술과 연계해 또 다른 영역으로 발전할 전망이다. 농진청은 기능성 작물·소재 연구를 바이오기술(BT), 정보통신기술(ICT), 인공지능(AI)과 결합한 차세대 기술로 육성,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미 시장에서는 AI·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기능성 예측 기술 연구 방식을 도입하거나, 생물 정보학을 이용해 소비자의 유전적 특징에 따른 맞춤형 제품(화장품 등)을 생산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기초(추출·분리·정제)에 응용기술(나노, 효소, 생물전환 등)을 접목하는 이른바 ‘푸드테크(Food-Tech·ICT와 접목해 새롭게 창출한 식품 가공 첨단기술 산업을 통칭)’는 미래 식품산업의 대세로 떠오를 전망이다.

김경규 농진청장은 “농업에서 기능성 소재 분야 연구는 매우 광범위하고 미래 먹거리를 발굴할 수 있는 미개척 영역”이라며 “새 기능성 소재의 발굴은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민 기자 bohe00@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