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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만석(1933∼2019)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한 달 남짓 됐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어머니 집에 가도 아버지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어 더욱 그렇다.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무척 바쁘셨다. 그 시절 우리의 아버지들이 다 그랬듯이 가정보다는 일이 먼저였다.

그래도 아버지는 가끔 동네 목욕탕에 가실 때면, 늦둥이인 나를 항상 데리고 가셨다. 아버지는 나에게 조금만 참으면 뜨겁지 않다면서 탕 속에서 안심을 시켜주시곤 하셨다. 그리고 불린 몸의 때를 깨끗이 밀어주셨다. 나이가 좀 들어서는 나도 아버지의 등을 밀어드릴 수 있게 됐다. 공직을 은퇴하시고 멀리 시골에 사실 때는, 가끔 뵈러 가면 누가 먼저라고 얘기할 것도 없이 함께 목욕탕에 가곤 했다.

아버지는 작년부터 치매로 많이 힘드셨다. 더욱이 2번의 수술로 기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보행조차 어려워지셨다. 병원을 퇴원하고 서울에 급히 마련한 집에서 요양하시면서 나는 아버지와 주말에 목욕탕을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거동이 쉽지 않다 보니 목욕탕에 가면 시간이 무척 많이 걸렸다. 그래도 목욕탕에 갔다 오면 아버지는 컨디션도 좋아지고 얼굴도 훨씬 밝아지셨다.

한번은 아버지와 함께 탕에 들어가서 몸을 불리고 있는데, 아빠와 함께 온 꼬맹이를 보고는 빙그레 웃고 계시는 것을 봤다. 나는 아버지에게 건강이 좀 더 회복되시면 손주 환이를 데리고 같이 목욕탕에 오자고 했다. 아버지는 꼭 그렇게 하자면서 무척 즐거워하셨다.

몇 달 뒤 아버지는 노인성질환으로 인한 뇌출혈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몸이 많이 회복되셔서 목욕탕에 다시 모시고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바쁘다 보니 차일피일 미루게 됐다. 결국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손주 환이의 손을 잡고 탕에 들어가서 함께 몸을 불리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마음이 저며 온다. 아버지에게는 손주와 함께 목욕탕에 가자는 약속을 못 지켜드려서 한없이 죄송하고, 아들 환이에게는 할아버지와 함께 목욕하는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주지 못해 미안하다. 아버지, 사랑하고 죄송합니다.

아들 박상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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