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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진 연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아동학대 빈도·수위 증가 불구
사회가 지켜 주는 안전망 허술

10~20대 자살률 증가 원인이
가정폭력의 후유증이라면?

법·제도 등 선진국 수준 정비
억울하게 떠난 아이들 진혼곡

또다시 보호자에게 맞아 숨진 5세 아이의 소식이 들린다. 아동학대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집행유예 기간에 있었던 20대 계부가 보육원에서 지내던 어린 자녀들을 갑자기 집으로 데려왔다. 이후 다시 학대를 시작해 다섯 살 의붓아들의 손과 발을 묶어 놓고 때려 숨지게 했다. 어떻게 문명국가에서 이런 일들이 반복해서 일어나는지, 도무지 아이들을 보호하는 우리의 제도는 왜 이리 허술한지 가슴이 답답하다. 이번 사건도 아동학대 혐의로 집행유예를 받은 계부가 제대로 된 학대예방교육은 받았는지, 아이들을 함께 보호해야 할 어머니는 곁에서 뭘 했는지, 보육원에서 아이들을 갑자기 집으로 데려갈 때 안전한 환경인지 확인할 방안은 없었는지 등 위기에 처한 아이들을 보호하는 제도에 큰 구멍이 보인다. 문제는, 이런 제도상의 허점이 오랜 기간 방치돼 아동학대의 빈도와 폭력의 수위가 점점 높아진다는 것이다.

아동학대 112신고는 매년 늘어 연평균 1만2100건, 하루 평균 33건의 아동학대가 신고되는 셈이다. 이 중 학대 혐의가 짙어 경찰이 검찰에 송치한 건수도 가파르게 늘어 2018년에는 3696건으로, 2016년의 2992건에 비해 23.5%나 증가했다. 신고 건수에 비해 실제 사건 수는 10배 정도 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고려하면 하루 약 330명의 아이가 학대로 고통받는다고 여겨진다. 아동학대의 후유증은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아동학대는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는 유아기에 가장 흔한데, 이 시기에는 신체 발달뿐만 아니라 두뇌 활동이 빠르게 일어난다. 이때에 방임, 학대를 겪으면 두뇌에 심한 스트레스 반응이 일어나고, 언어와 정서발달 관련 뇌 영역에 손상이 생긴다고 보고돼 있다. 유아기 아동학대는 심리적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뇌 발달에 손상을 줘 언어·인지·정서 발달에 광범위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의미다. 치료되지 않은 아동학대의 상처는 한 개인의 적응능력을 떨어뜨려 영원히 2등 국민으로 머무르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아동학대는 개인에겐 한없는 불행을, 사회에는 광범위한 손실을 주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아동학대를 다루는 법과 제도를 자세히 보면 출산율은 떨어지는데 아동학대 사례는 가파르게 치솟는 이유를 잘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아이들을 보호하는 일에는 법과 제도가 너무 허술하고, 국가 예산도 너무 적어 우리 국내총생산(GDP)의 3배 규모인 일본의 약 7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그 결과 체계적으로 아동학대를 예방하고, 가해 부모를 교육·감시하며 학대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2014년 이전까지만 해도 아동학대는 아동복지법에서 포괄적으로 다루다 보니, 정작 가해 부모에게 아동을 분리해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2014년 아동학대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돼 임시 조치에 따라 학대 사건으로 판결 나기 전에도 가해 부모로부터 보호가 가능해진 것이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도 강화되고 수사도 경찰이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됐지만, 여기까지다. 가해 부모에 대한 학대 예방교육이 제대로 이뤄져 그 결과 학대의 위험이 낮아졌는지 확인하는 제도도 부실하고, 심지어 이번 사례처럼 보육시설에서 지내는 아이들을 가해 부모들이 만나거나 데려가려 할 때 어떤 절차로 보호해야 하는지도 제대로 된 규정이 없다. 선진국의 경우, 가해 부모들은 일단 법적 처벌을 받은 후에도 아이들을 돌볼 준비가 됐는지 전문가와 판사가 함께하는 위원회에서 확인하고 허가를 받아야 아이들을 볼 수 있다. 그 사이에 아이들은 위탁 가정에서 전문적 치료와 함께 보호된다. 이 모든 과정이 모두 법에 명시돼 있고, 관련 전문가들의 참여와 예산의 뒷받침 속에 가능하다. 우리는 아이들을 가해 부모로부터 일시 분리·보호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또 언제쯤 피학대 아동 사후관리 체계를 제대로 갖추게 될까. 그새 말도 못 하고 보호자에게 맞아 목숨을 잃는 아이들은 이 각박한 세상에서 늘어날 것이다.

부모에 의한 학대로 사망에 이르지 않더라도 어릴 때부터 방임, 정서적 학대, 가정폭력 등에 시달리며 심적 고통을 평생 느끼며 자라는 아이도 적지 않다. 이 아이들은 사춘기가 되면 우울증, 자해, 자살 등의 극단적 선택을 해 주변을 안타깝게 한다. 요즘 증가하는 자해·자살 시도 청소년들을 진료하는 필자의 경험으로는, 이런 청소년 중 열에 일곱은 반드시 폭력적·강압적 양육 태도를 가진 부모가 있었다. 그리고 이 부모의 양육 태도가 변하지 않으면 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아, 일정 기간 폭력적인 부모와 떨어져 지내며 치료를 해 겨우 구해내기도 한다. 이런 부모들을 상담해 보면 그들 역시 부모들로부터 방임과 학대를 받고 자라서 일반인들과 몹시 다른 폭력적·억압적 양육 태도가 옳다고 믿고 행했음이 드러난다. 이들을 대상으로 현재 시행하는 일반론적 학대예방교육은 실효성이 없고, 공감능력 증진 또는 폭력성 억제 인지행동치료와 같은 전문적 상담치료가 필요하다. 피해 아동 역시 보육시설 보호 이상의 전문적인 치료 프로그램이 필요한데, 보건복지부와 법무부에서 그런 예산이나 정책을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최근 10대, 20대 자살률이 늘어나는 이유가 단순히 베르테르 효과가 아니라 치유되지 않은 가정폭력의 후유증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부터라도 말도 못 하고 부모에게 맞아 목숨을 잃는 아이들이 없도록 하기 위한 실제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관련 법과 제도, 예산을 문명국 수준으로 갖추는 것이 억울하게 하늘로 떠난 아이들을 위한 진정한 진혼곡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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