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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도시 김시덕 지음／열린책들

화석은 오늘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수많은 생물의 모습과 그 생물이 생존했던 시대의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히말라야 산맥에서 발견된 조개 화석은 이곳이 신생대 초기에 바다였음을 알려주고, 캄브리아기에 살았던 최초의 척삭동물 하이쿠이크티스 화석은 인류의 조상이 바다에 살았던 작은 생명체였음을 증명한다. 과거를 통해 인류는 자신의 기원을 이해하게 됐다.

서울은 인구 1000만 명이 모여 사는 거대 도시이자,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인 2500만 명이 밀집한 수도권의 핵심이다. 1945년 해방 당시 인구 90만 명이었던 서울은 짧은 기간에 어떤 과정을 거쳐 공룡으로 변신한 것일까. 저자는 서울과 주변 도시를 ‘대서울’이란 개념으로 묶어 도시 곳곳을 답사하고 과거의 흔적을 톺아본다. 이를 통해 저자는 ‘대서울’의 형성 과정을 파악하고 그 속에서 진행 중인 갈등의 역사를 읽는다.

저자는 서울의 범위를 서울시의 행정구역으로 한정해선 서울의 본질을 포착할 수 없다고 말한다. 서울의 정치·경제·문화적 영향력이 주변 도시들로 확산하고, 서울과 주변 도시들이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게 이유다. 저자는 고고학자가 절벽의 단면을 통해 지층을 탐구하듯이 ‘대서울’이 성장하고 변화해 온 시층(時層)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을지로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기, 20세기 후기, 21세기 초에 만들어진 건물이 한 공간에 뒤섞여 있다. 저자는 이런 시층을 탐구할 수 있는 수단인 건물의 건축 양식, 길의 형태, 머릿돌, 비석, 간판, 팸플릿, 벽보, 플래카드 등을 ‘도시화석’으로 정의한다. 서울 중구 광희동의 한 오래된 가게 간판에 담긴 ‘다다미’란 단어는 이 지역이 식민지 시대 일본인 거주지였음을 알려준다. 과거 단국대가 있었던 한남동의 한 철물점 간판에 희미하게 보이는 식당 이름은 이 지역의 상권 변화를 말해준다.

저자는 자신의 거주지인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시작해 시계 방향으로 ‘대서울’을 답사하며 ‘도시화석’을 통해 갈등하며 살아가고 또 죽어 간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발견한다. 저자는 빈민촌 해체로 도시 곳곳에 숨어든 빈민들을 발견하고, 공장과 성매매 집결지와 한센인 정착촌이 고층 아파트 단지에 떠밀려 ‘대서울’의 외곽으로 쫓겨나는 광경을 목격한다. 식민지 시대 공간과 달동네를 밀어내고 박물관에 그 공간을 어설프게 재현한 게 옳은지도 묻는다. 피맛골이 과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철저하게 사라진 이유 또한 서민의 공간이 지배층의 공간과 달리 보존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니었냐고 꼬집는다. 평소엔 생각하지 못한 아픈 지적이다.

저자는 “서울시는 청결·균질한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는데, 그런 환경이 생물의 면역력에 해를 끼치듯 서울 시민에게도 해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대서울’의 밑바닥에 남아 있는 ‘도시화석’을 들여다보는 일이 진짜 서울의 역사를 만나는 일이 아닐까. 512쪽, 2만 원.

정진영 기자 news119@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