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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교 사회부장

조국 수사 요란해 보이는 것은
혐의가 유례없이 요란한 때문
개혁 앞세우기는 범법 물타기

문 대통령부터 진영 논리 벗고
정의와 양심의 잣대 바로 봐야
‘더러운 손’으론 檢 수술 못 해

조국 사태의 본질은 정의와 불의, 합법과 불법, 공정과 협잡의 문제다. 그런데 여당과 청와대는 정치적 논쟁이나 진영 대립의 문제로 끌고 가려 한다. 수사가 다소 요란해 보이는 것은, 조국 가족의 범죄 혐의가 3대에 걸쳐 가지가지로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혐의를 수사하지 않으면 공권력도 아니다. 그런데도 여당 정치인들과 청와대 참모들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언하기보다 검찰 개혁을 내세워 조국 비리를 덮으려 한다.

그러나 사회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속으로 잇속만 챙긴 조국 가족의 위선은 검찰 개혁보다 훨씬 근원적인 문제다. 검찰 개혁의 필요성과 그에 대한 논의는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특정인만 할 수 있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조국 가족은 서류를 위조해 쌓은 스펙으로 다른 젊은이의 기회를 빼앗으면서 자기 자녀를 명문 대학에 보내 좋은 미래를 만들어 냈고, 투자자들의 돈을 강탈하려고 주식시장 주변을 기웃거린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않겠다는 영리한 도둑에게 검찰 개혁을 맡길 수 있을까. 검찰은 물론 국민은 ‘더러운 손’이 개혁이라는 수술을 집도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더 심각한 사안은 국가 전체로 퍼지는 지도층에 대한 불신과 혐오, 냉소주의, 국민 분열이다. ‘개·돼지’라는 말까지 들었던 대중은 이제 권력을 잡는 데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좌파 지식인으로 시민사회단체 활동의 앞줄에 서거나, 우파 엘리트의 길을 걸으면서 여의도 정치에 몸을 담거나…. 조국 법무부 장관은 가치와 도덕, 선과 악을 구별하는 옳고 그름의 판단과 기준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위선적 좌파 활동가들 입장에서 보면 어떤 편법과 불법을 동원해서라도 좋은 위치를 차지하면 그만이다. 그들에게 국민은 어리석은 군중 집합체일 뿐이다. 그럴듯한 말과 명분을 내세워 ‘위선의 바벨탑’을 계속 쌓아올리면 그만이다. 대통령까지 나선 촛불집회 동원령에 따라 28일 밤 서초동 검찰청사 주변에 모인 시위 참여자들은 좌파 활동가들의 이 같은 인식을 확신시켜주고 있다.

우리는 지금 사회 공동체의 기본 가치가 허물어지고 민주주의가 파탄을 맞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바벨탑은 결국 무너져 내릴 수 밖에 없다. 조국 사태로 인해 “엘리트들은 표면적으로 상황을 변화시킴으로써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않는 방식을 발견했고, 실제로는 엘리트들만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논설주간 아난드 기리다라다스의 저서 ‘엘리트 독식 사회’의 내용이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는 국민이 점점 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조국이라는 이름의 바이러스가 국가를 불치의 병으로 몰고 가기 전에 결단을 내려 조국 법무부 장관을 해임해야 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지난 27일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인권을 존중하는 절제된 검찰권의 행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문 대통령 역시 본말이 전도된 진영논리에 빠져 있는 셈이다.

2005년 10월 1일 문 대통령이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근무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청계천 새물맞이’ 행사에 직접 참석했다. “서울을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도시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는 등 준비된 축사를 한 뒤 노 대통령은 원고에 없던 말을 덧붙였다. “결단을 내리고 강력한 의지로 사업을 추진한 이명박 시장의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야권의 유력한 대선 후보로 부상하고 있었다. 이 시장을 견제하기 위해 교통대란, 대홍수, 상인 피해 등 온갖 논리로 청계천 사업을 반대했던 청와대 참모들의 얼굴이 머쓱해지는 순간이었다. 한나라당 대표로서 경쟁 관계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래서 좀처럼 보기 힘든 통합의 모습이 연출됐다.

지난 26일 저녁 윤석열 검찰총장은 대학 동기인 황인규 변호사의 모친상 조문을 위해 어느 대형 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윤 총장이 들어서자 알아본 문상객들이 일제히 박수를 보내는 일이 있었다. 이 때문에 윤 총장이 무척이나 당황하고 민망해했다고 한다. 국민이 오죽 답답하면 상가(喪家)에서 이런 반응까지 보였을까. 문 대통령은 더 늦기 전에 노 대통령 정도의 통합의지라도 보여야 한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의 희망을 먼저 보여야 검찰 개혁 동력도 살아난다. 정의의 여신 디케는 이미 조국 곁을 떠난 지 오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