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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식 주필

박 前대통령 入院 장기화 조짐
내년 총선 변수 가능성 더 커져
배신 심판 여부에 與野 큰 관심

대한민국의 자살 걱정할 상황
탄핵은 ‘내 탓’ 인정이 출발점
태극기 세력도 변신해야 희망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보수 인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진보 인사들조차 국정이 이래도 되는지 우려하기 시작했다. 위기의 외양은 6·25전쟁이나 외환위기 등에 비해 덜 심각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위험하다. 안보·경제 쓰나미에 더해, 과거 국난과는 달리 자유민주주의까지 위태롭기 때문이다.

집권세력이 이런 상황을 주도한다는 점에서 ‘국가의 자살’로 이어질 수도 있다. ‘역사상 가장 긴 자살 유서’로 불리는 영국 노동당의 1983년 총선 공약집은 지금도 영국은 물론 세계 각국의 타산지석이 되고 있다. 군축, 유럽 동맹과 결별, 부유세, 기업 국영화 등 나라를 뒤흔들 내용이 즐비했지만, 유권자들이 거부해 노동당 자살로 끝났을 뿐, 영국의 자살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더 위험한 정책들이 집행되고 있다. 여권은 내년 4월 총선 승리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총선에 이겨 정권을 탄핵하고 두 전임 대통령을 수감한 기억이 이젠 필사적 방어기제로 작용한다.

여권의 ‘무조건 승리’ 전략 중에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문제가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16일부터 어깨 수술을 받고 입원해 있다. 2∼3개월 치료가 필요하다고 한다. 따라서 입원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속셈은 다르지만, 여야 모두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병원에 머무르며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고, 그 뒤엔 특별사면도 가능해진다.

이미 박 전 대통령은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선거의 중요 변수로 등장했다. ‘선거의 여왕’이 돌아온 셈이다. 탄핵에 찬성한 배신자들을 심판할 것인가, 용서할 것인가. ‘태극기 부대’나 우리공화당의 열정은 뜨겁지만, 정치 주류가 되기는 힘들다. 따라서 배신을 심판하면 보수 분열을 초래해 더불어민주당을 돕는 결과를 낳고, 보수 정치를 도우려면 심판을 포기해야 한다. 가만히 있더라도 보수 진영을 혼란스럽게 해 민주당을 거들게 된다. 이론적으로 박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적대적 공생’도 가능하다.

박 전 대통령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 뒤 칩거하다가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정치에 뛰어들었다. “국민이 피땀 흘려 쌓은 공든 탑이 한순간에 무너질지 모른다”는 이유였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차떼기당’ 오명을 쓰고 50석도 힘들다는 몰락의 전망이 나왔을 때, “부모님도 없고, 더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습니다. 제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라고 호소한 끝에 121석을 얻었다. 그는 다시 결단의 기로에 섰다. 인간적 배신감이 사무치겠지만, 지도자라면 감정에 휘둘려 나라를 망하게 해서는 안 된다. 탄핵의 가장 큰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 수모를 견디면서 임기를 채웠다면, 사법권력 코드화라도 막아냈을 것이다. ‘내 탓’ 인정과 나라의 장래, 이것이 판단 기준이어야 한다. 그러면 선택은 자명하다. 보수 정치권 전체를 향해 ‘탄핵 책임은 모두 내가 지고 갈 테니 지난 일은 가슴에 묻고 단결해 달라’는 선명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태극기 세력도 무엇이 진정한 애국이고, 박 전 대통령을 위하는 길인지 냉철히 생각해야 한다. 분풀이에 그칠지, 정권 교체에 앞장설지 선택해야 한다. 후자라면 정교한 전략·전술이 필요하다. 감정을 앞세워선 이길 수 없다. 탄핵 무효를 외치기보다 탄핵당한 잣대로 현 정권을 감시하며 지지층을 넓혀야 한다. 젊은 인재들을 영입해 전면에 내세워 키우고, 건국·산업화 역군들은 울타리 역할을 해야 한다. 손자·손녀 세대도 함께할 수 있게 행동해야 희망을 만들 수 있다.

자유한국당은 오로지 국정 실력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민부론’같은 대안을 계속 제시할 필요가 있다. 삭발의 충정은 이해하지만, 머리를 깎기보다 잘 쓰는 일이 더 중요하다. 여권의 이벤트 정치를 비난하지 말고 더 뛰어난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아직 멀었다. 지금 형세를 보면, 총선 필패는 물론 개헌 저지선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선거에 이겨야 박 전 대통령 본인은 물론 박정희 시대의 복권도 가능하다. 탄핵은 정치의 연장이므로 노무현 경우처럼 시류에 따라 변전할 것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이미 무의미하다. 코드 대법원 구성으로 더 그렇게 됐다. 이제는 역사의 평가를 생각할 때다. ‘태풍 앞의 촛불’ 같은 대한민국의 쇠망을 막을 건가, 거들 건가. 박 전 대통령에게 주어진 마지막 애국의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