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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바른사회 공동대표

자본주의 국가에서 모든 생산자원은 원칙적으로 민간이 갖고 있다. 국가는 징세권만 갖고 있다. 근대 자본주의 역사는 ‘대표 없이 세금 없다’는 원칙을 관철시키기 위한 투쟁의 역사이기도 했다. 현재 대다수 문명국에서는 국민의 대표가 세율을 정하고 세금을 집행한다. 그렇다면 재정 운용은 순조롭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근래 재정위기를 겪은 그리스와 포르투갈 등 이른바 ‘GIIPS’ 사례가 이를 웅변한다.

문제의 심연은, ‘국민의 대표’라고 해서 반드시 ‘공익’을 추구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국민의 대표도 ‘도덕적 해이’에 빠질 수 있다. 대표가 재선이란 ‘정치적 이득’을 추구한다면 표를 얻기 위해 미래 자원을 앞당겨 쓸 것이다. 그 같은 성향의 대표를 유권자가 견제하지 않으면 국가는 지속 가능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행태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은행이 4일 발표한 ‘2018년 공공부문 계정’에 따르면 지난해 비(非)금융 공기업의 재정수지가 10조 원 적자로 밝혀졌다. 이는 전년도 적자분 4000억 원의 25배나 된다. 통상적으로 공기업도 기업이기 때문에 이익을 내는 게 정상이고, 공기업이 이익을 내면 일반 국민의 세금 부담은 그만큼 가벼워진다. 공기업 적자가 1년 새 25배나 커진 것은 ‘탈원전, 주거복지 강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 등 정부발(發) 정책 리스크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민간 기업이라면 적자를 줄이려는 노력을 기울였겠지만, 공기업은 그럴 필요가 없다. 문 정부가 공공기관 경영평가 방식을 수익성과 건전성 등 재무지표보다 윤리경영, 상생협력, 일자리 창출 등 ‘사회적 가치’에 더 큰 비중을 두는 쪽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적자 공기업이 있다면 손실을 키우더라도 사람을 더 뽑아 ‘일자리 창출’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 기관 평가에 유리할 수도 있다.

서구 선진국에 비해 사회보장 제도를 늦게 도입했기 때문에 사회보장 부문에서는 ‘구조적’으로 흑자를 실현했다. 예컨대, 연금을 타 가는 사람보다 연금 보험료를 내는 사람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사회보장기금 관련 흑자분을 통합재정수지에서 분리해 ‘관리재정수지’란 항목으로 별도 관리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최근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료 수입이 증가하는 속도보다 사회보장지급액의 증가 속도가 빨라지면서 흑자 폭이 크게 줄고 있다. 그만큼 연금 고갈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얘기다. 연금과 무관한 국민 세금에서 지급되는 기초연금 수급자는 올 3월 기준 520만 명이다. 2014년 월 최대 20만 원으로 시작한 기초연금은 문 대통령 공약에 따라 25만 원으로 오른 데 이어 2021년엔 30만 원이 된다. 결국은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귀착될 것이다.

문 정부는 소위 ‘문재인 케어’를 발표하면서 대부분 의료행위를 급여화했다. 자기공명영상(MRI), 초음파, 특진비, 상급병실 등을 ‘필수의료’로 인정해 건보를 적용했다. 그 결과 공짜심리에 의한 과잉진료가 급증하면서 7년 연속 흑자이던 건보 재정이 지난해 1778억 원 적자로 돌아섰다. 올해는 적자가 3조 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문 정권 말엔 건보 적립금 20조 원 중 10조 원이 없어진다.

사회복지 분담금은 누군가의 지갑에서 나온다. 대통령 등 정치인들이 쉽게 생각하고 약속한 선심들이 임기 절반도 안 돼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그 부메랑은 결국은 청년 세대에 재앙이 될 것이다. 재정 탕진은 미래를 착취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