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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미국의 진보와 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억만장자 자선사업가 조지 소로스(89)와 찰스 코크(84)가 의기투합해 만든 싱크탱크 ‘퀸시 연구소’가 오는 9월 워싱턴에서 문을 연다. 미국판 ‘좌우합작 프로젝트’라 할 만한 이 연구소 설립에 소로스의 열린 사회 재단과 코크의 찰스 코크 재단이 각각 50만 달러(약 6억 원)를 종잣돈으로 출연했다. 올해 퀸시 연구소 문을 연 뒤 내년에 연 350만 달러의 예산을 확보해 전문가들을 영입할 계획이라고 한다.

두 거부(巨富)는 합작 싱크탱크의 명칭을 소로스-코크 연구소 대신 퀸시 연구소로 정했다. 제6대 대통령 퀸시 애덤스(1767∼1848)에서 명칭을 따왔다. 애덤스는 국무장관이던 1821년 7월 4일 독립기념일 때 “미국은 파괴할 악마를 좇아 해외로 가선 안 된다”는 명연설을 했는데, 그만큼 일방적인 군사력 사용보다 평화와 협상을 중시했다.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1735∼1826)의 맏아들이기도 하다. 연구소 명칭엔 워싱턴의 공화당과 민주당 주류 인사들이 견지하는 미국의 대외 개입주의에 선을 긋고 국제 평화와 협력, 인권 중시에 주력하겠다는 소로스·코크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한다. 따라서 무력 개입보다 협상을 통한 갈등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와 미국의 이란 핵 합의 복귀, 베네수엘라 갈등 해결 등이 우선 다뤄질 전망이다. 협상을 통한 북핵 해결을 주장하며 미·북 1.5트랙 대화를 주선해온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수전 디마지오 연구원 등도 합류할 것으로 알려져 한반도 문제도 주요 이슈에 포함될 듯하다.

320억 달러를 기부하고도 80억 달러를 보유 중인 소로스는 민주당 및 진보 비정부기구(NGO)를 후원해왔다. 2004년 대선 때엔 “조지 W 부시의 재선을 막을 수 있다면 전 재산을 내놓겠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석유 재벌로 500억 달러 자산가인 코크는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강력 지지자로서 공화당 및 보수 NGO의 작은 정부 옹호 캠페인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왔다. 평생 대척점에 섰던 두 사람은 도널드 트럼프 시대 국내외적으로 갈등이 확산되며 미국의 위상이 흔들리자 반(反) 트럼프 기치로 가보지 않은 길을 함께 걷는 동반자가 됐다. “미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파트너십”이라는 평을 받는 합작이 성공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