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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일제에 침략당했던 만 35년간 많은 친일파가 명성을 날렸다. 친미와 친러를 거쳐 친일에 이른 이완용부터 매일신보에서 피와 살과 뼈가 일본인이 돼야 한다고 썼던 이광수까지,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다룬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친일파 수가 4776명이다.

이 중에는 친일의 정점을 찍은 이도 있었다. 재산을 좇아 말년을 대구에서 보낸 박중양. 일본으로 유학을 갔을 때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게 그의 사상과 일본의 문물을 배웠으며 그의 부인이 물에 빠지자 그녀를 구해 이토의 신임을 얻었다. 박중양도 이토를 이토 공이나 이등 공이라는 호칭으로 항상 깍듯하게 대했다. 그로 인해 박중양이 그들의 양자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 가까운 관계여서 통감부나 총독부의 일본인 관리들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유학을 마치고 대구에서 판관으로 있던 시절에 조정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인과 모사해 대구읍성을 허물었고 성을 쌓았던 돌들을 헐값에 넘겼다. 일본인들의 이득을 위해 편의를 봐주던 박중양은 그들과 교류가 잦아, 만날 때마다 자신이 좋아하던 맥주와 소주를 자주 마셨다. 1907년에는 소주 40병을 마시고 맥주 60병을 마셔도 취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해져 ‘보리술 관찰사’나 ‘박태백’ 등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에 박중양은 많이 마시고도 취하지 않았던 것이 일본 맥주이기에 가능했다고 말할 정도로 일상이 온통 일본의 덕이었다.

박중양은 충북도지사를 지냈던 1924년 11월 26일에 조선 총독이던 사이토 마코토(齊藤實) 부부와 관리들을 데리고 외부인의 출입 통제가 엄하던 속리산 법주사에 가서 자연경관과 유흥을 즐겼다. 이들은 식사와 더불어 사케와 맥주를 마셨다. 술을 마시던 와중에 시중을 들기 위해 머물던 20세의 어린 비구승이 있었는데, 그 비구승의 이름이 양순재였다. 다음 날 박중양과 일행은 법주사를 떠났고 그 어린 비구승은 보이지 않다가 몇 날이 지나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박중양이 관련됐을 가능성이 컸지만, 친일 권력의 핵심에 있었기에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을 리는 만무했다. 그로부터 몇 달 뒤인 1925년 3월 6일 자 동아일보에서 묻혔던 이 사건을 다루며 그의 치부가 알려져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시간이 흘러 일본의 동맹국인 이탈리아와 독일이 패망했음을 알고 일제 패망도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예감한 박중양은 서울의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자신의 토지재산이 많이 있던 대구로 내려가 은신하게 됐다. 나중에 군정을 위해 들어온 하지 중장에게 인물이 부족한 조선에서 친일을 단죄하면 나라를 이끌어갈 인재를 잃게 된다는 논리로 친일파들의 처벌을 막았다.

해방된 이후에 우리나라에서는 한동안 일본 맥주를 맛볼 수 없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대형 마트나 24시간 편의점을 통해 언제든지 일본 맥주를 마실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친일파의 사랑을 받았듯이 일본 맥주를 찾는 손길도 많아 꾸준히 인기를 끌었다. 일본과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는 지금은 오히려 불매운동의 표적이 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한국인들이 맛있는 일본 맥주를 안 마시고는 못 버틸 것이라며 불매운동은 얼마 못 갈 것이라고 큰소리치지만 우리는 크게 떠들 필요 없이 행동으로 우리의 결연한 의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