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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사회 ‘어른답게 삽시다’ 책 펴낸 이시형 박사

늙는 것 저항해봤자 소용없어
몸보다 마음건강이 더 중요해
마음만은 세월 비껴갈 수 있어
홀로서기는 건강·경제적 자립

내 가치·존재감 내가 결정해야
열심히 살아온 자신에 대한 예의

“사람이 늙어간다는 건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 아닌가요? 그러니 늙음에 맞서는 항노화(抗老化)가 아니고, 죽는 순간까지 현역으로 뛰는 순노화(順老化)가 답입니다.”

정신의학계의 권위자이자 뇌과학자인 이시형(사진) 박사는 올해로 86세. 여전히 의사로 일하면서 작가이자 최고 인기 강사로 쉼 없이 불려 다니고, 선마을 촌장, 세로토닌문화원 원장 등 직함도 여럿이다. 그가 고령사회에서 나이 듦의 미학을 말하는 ‘어른답게 삽시다’(특별한서재)를 최근 펴냈다. 노인을 위한 사회안전망은 물론 그들을 위한 사유나 철학도 빈곤한 우리 현실에서 이 박사는 제대로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노화를 굳이 적으로 보면서 거기에 대항할 전략을 짜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야 소용없는 일”이라며 “늙음은 탄생과 죽음처럼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대개 우리 노인들은 노화에 좌절하거나 건강관리를 포기하기 십상이다. 그는 “회복 탄력성을 키우는 데는 몸보다 마음의 건강이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몸이 늙고 약해진다고 정신까지 몸을 따라가라는 법은 없다. 마음만은 세월을 비켜 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우선 가져야 할 마음가짐으로 “나이가 들수록 자기 자신에 대해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내가 자신의 가치와 존재감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지금껏 열심히 살아온 자신에 대한 예의”라는 것이다. 특히 노인들의 ‘진정한 홀로서기’, 곧 ‘자립’을 가장 필요한 것으로 꼽았다. 건강을 스스로 챙기는 ‘건강적 자립’, 은퇴 후에도 사회적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경제적 자립’, 그리고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 주어진 시간을 충실히 사는 ‘정신적 자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이 세상 끝나는 날까지 그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자기 자신으로 당당히 살다 죽을 수 있는 삶의 결정권을 갖자는 얘기”라고 설명한다.

그는 결론적으로 “죽는 순간까지 현역으로 뛸 수 있게 준비하는 게 중요하며 그것이 ‘웰다잉’”이라고 강조했다. 단 한 번도 은퇴를 고려해본 적이 없으며 지금도 지하철을 탈 때는 꼭 돈을 낸다는 그는 “온 힘을 다해 강연을 마치고 노곤해진 몸을 이끌고 숙소로 터덜터덜 돌아오는 길, 갑자기 잠자듯 세상과 이별할 수 있다면, 그것이 내게 최고로 명예롭고 멋진 죽음이라고 믿는다”고 말한다. 장기 기증은 물론 시체 기증까지 유언장을 통해 약속해 둔 그는 “나의 죽음을 전해 들은 지인들이 나를 떠올리며 기도라도 한 번 해주면 그것만으로 훌륭한 장례식”이라고 덧붙였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