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쟁 중지협정’ 검토 촉구 왜

지소미아 폐기로 확전될 경우
北核 등 대응 공조 깨질 우려
개입보다 ‘협상 판’ 깔기 포석
본격적인 중재역 나설지 주목

미국이 한·일갈등 고조와 관련, 기존의 관망 입장에서 거중조정을 할 수도 있다는 쪽으로 기류 변화를 보이는 것은 한·미·일 3각 동맹이 약화하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다. 미국이 한·일에 ‘분쟁 중지 협정’(standstill agreement) 서명을 촉구하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이 한·일 외교장관을 만나 갈등 해소 방안을 찾도록 독려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외교적 갈등이 무역 갈등으로 번진 데 이어 군사동맹을 흔드는 데까지 이어질 조짐을 보이자 양국에 냉각기를 갖도록 하려는 포석이다.

3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한국과 일본에 협상을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더 이상 상황을 악화시키는 조치를 하지 않는다는 분쟁 중지 협정에 서명할 것을 촉구했다. 분쟁 중지 조치가 일본의 한국에 대한 반도체 부품 수출 금지 등 한·일 간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겠지만, 양국의 추가 보복 조치를 막음으로써 양국 갈등을 당분간 진정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미국의 이번 제안은 일본 정부가 이르면 다음 달 2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심의·의결할 것으로 알려지고, 한국 정부는 이에 맞서 다음 달 24일 개정 시한을 맞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의 폐기를 검토하는 가운데 나왔다. 한·일 갈등이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제외와 지소미아 폐기로 확산할 경우 북한 핵·미사일 대응을 위한 한·미·일 공조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소미아는 북 핵·미사일 정보 공유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국회 국방위원회 간사 하태경(바른미래당) 의원은 31일 페이스북에 “국방부의 답변에 따르면, 한·일 양국은 지소미아 체결 이후 현재까지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관해 한국이 일본에 24건, 일본이 한국에 24건씩 총 48건의 정보를 공유했다”며 “7월 25일 북한 탄도미사일 관련 정보도 주고받았다”고 밝혔다.

미국의 분쟁 중지 협정 제시는 한·일 갈등에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대화의 판을 깔아 주려는 목적이 담겨 있다. 아시아 주요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기 어려운 상황에서 한·일 당사자 간 해결 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한·일 양측의 요구가 있을 경우 관여하겠다고 밝힌 만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계기로 한·일 대화가 본격화하면 미국도 판이 깨지지 않도록 관망 자세에서 벗어나 거중조정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관측이다.

워싱턴=김석 특파원 su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