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는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우여곡절을 거치면서도 전체적으로 경제·안보·문화 협력이 강화하는 쪽으로 움직여왔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말기부터 나빠지기 시작했고, 박근혜 정부에서 심각하게 악화했으며, 문재인 정부 들어 파국을 맞고 있다. 특히, 현 집권세력의 ‘반일(反日) 프레임’은 매우 강력하다. 1997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강제징용 소송과 관련, 문 정권 출범 뒤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의 대법원이 지난해 10월 30일 배상 판결을 확정한 것도 그런 맥락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동안 법원은 국가 간 조약에 대한 ‘사법 자제’ 원칙을 가급적 지켜왔다.

노무현 정부에서 주일 대사를 지낸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의 고언(苦言)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라 교수는 “일부러 한·일 관계 해결을 안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국내 정치적으로 친일파라고 몰아세우는 경향도 있다”고 했다. 라 교수는 “문 정부는 일본의 전략적 중요성을 모르는 것 같다.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이 가까이 있지 않았더라면 6·25전쟁에서 졌을 수도 있다’고 했다”고도 했다. 현 여권 내부의 반일 프레임의 위험성을 지적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8일 조직하는 ‘일본경제보복 대응 특별위원회’ 위원장에 내정된 최재성 의원은 ‘경제 침략’이라고 규정하며 의병운동이라도 필요하다고 했다. 이런 흐름의 원천에는 문 대통령이 있다. 민주당은 19대 대선 공약집에서 한·일관계와 관련해 ‘역사 문제의 진정한 반성’을 내걸었다. 위안부 합의도 외교 적폐라며 파기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친일 잔재 청산은 오래 미뤄둔 숙제”라고 했다. 민주당 출신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친일기업 불매운동, 진보·좌파 출신 교육감들은 친일 용어 청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일본에 맞서려면 일본을 더 잘 알아야 하는데, 문 정부 들어 대일(對日)외교는 완전히 붕괴했다. 박 정부 때 한·일 위안부 합의를 이끌었던 주역이 적폐로 몰리면서 주일 대사관 경제공사는 4개월째 공석이다. 주일 대사도 코드 인사들이 맡고 있다. 외교부는 동북아국을 사실상 ‘중국국’으로 만들고 일본을 아태국 쪽으로 붙였다. 시대착오적인 반일 프레임을 폐기하고, 대일 외교 라인을 되살리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