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양심의 선서 4일 인천 중구 제물포고에서 학생들이 무감독 기말고사를 치르기 전 ‘양심의 1점은 부정의 100점보다 명예롭다’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 일일교사로 시험 진행해보니

“수학망쳤지만 양심지켜 뿌듯”

3년간 단 한 건의 부정 없었던
63회 졸업생에 첫 양심인증서

이미지 크게보기 4일 무감독 기말고사를 치른 인천 제물포고 학생에게 배부된 ‘양심의 소리’ 쪽지. 김낙중 기자 sanjoong@

올해로 63년째 ‘무감독 시험’을 이어온 인천 제물포고가 4일부터 치러진 1학기 기말고사에서 또 한 번 의미 있는 도전에 나섰다. 교사의 감독 없이 진행되는 시험에 단 한 건의 부정행위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기자는 이 학교 일일교사로 이날 치러진 기말고사의 진행을 도왔다.

“양심의 1점은 부정의 100점보다 명예롭다.” 1교시 시작을 알리는 벨소리가 울리자 각 학급의 학생 대표가 교사에게 양심을 버리지 않겠다는 내용의 선서를 하고 전체 학생과 교사가 함께 이 같은 구호를 외쳤다. 시험 때마다 반복하는 선언문이지만 서로를 격려하는 응원구호처럼 우렁찼다. 이후 30도가 웃도는 날씨지만 시험을 치르는 교실은 창문마저 굳게 닫혀 흔한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했다. 20개의 책걸상이 4열 5행으로 반듯하게 정렬된 교실에는 10명씩 각기 다른 학년의 학생들이 미리 정해준 자리에 앉았다.

“교내 모든 시험은 수능과 같은 방식으로 치러집니다. 다만 교실 안에 학생들을 감독할 교사만 없을 뿐입니다.” 이 학교 학생부장인 이희갑 교사는 그동안 무감독 시험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교사와 학생 간의 신뢰가 쌓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교사들 역시 시험이 끝날 때마다 학생들이 무기명으로 작성해 제출하는 ‘양심의 소리’ 쪽지를 믿는다고 했다. 이 학교 김병관(2학년) 군은 “커닝에 대한 유혹도 있지만 오랜 기간 지켜온 학교의 전통을 깰 수 없다”고 말했다. 김 군은 이날 마지막 3교시 수학 시험을 망치고도 양심을 지켰다는 뿌듯함에 밝은 표정으로 교실 문을 나섰다.

올해부터 이 학교는 졸업생 모두에게 ‘양심인증서’를 수여했다. 지난 3년간 단 한 건의 부정행위도 없었던 63회 졸업생이 첫 번째 양심인증서의 주인공이 됐다. 김수남 교장은 “양심적 참인간이 사회의 올바른 지도층이 되고 사회 정의를 이룰 초석이 될 것이란 신념이 무감독 시험의 전통을 지키는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 = 지건태 기자 jus216@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