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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동 경제산업부 부장

연말이 되면 정부가 다음 해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여름이 되면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는 것은 1962년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우면서 사실상 시작됐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국가 주도 개발 계획이었기 때문에 중심에 당연히 정부(국가)가 있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속에는 각 연도 계획도 있었을 것이고, 그 전통이 이어져 지금도 정부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있는 것일 게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 경상)이 3만 달러를 넘은 지금도 정부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는 게 과연 필요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오래전부터 “정부가 매해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는 것은 후진적인 행태”라는 비판이 있었다. 경제정책방향을 만드는 실무 책임자였던 옛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 중에서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지 않겠다”고 얘기한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정부가 경제정책방향을 만들고, 발표하는 이유는 뭘까.

과거에 정부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한 것은 가계와 기업에 ‘정부가 경제 정책을 이런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이라고 알리기 위한 목적이 컸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민간 경제라고 부를 만한 게 거의 없었고, 경제의 주축이 정부였다. 정부가 발표하는 정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도 매우 컸다. 그러나 이젠 정부가 발표하는 경제정책방향의 효용성이 그만큼 크지는 않다. 한국 경제의 주축이 민간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정부가 내놓는 경제정책방향을 보고 사업 계획을 짜는 기업도 거의 없다. 반도체 등 특정 업종의 경기 전망에 대해서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글로벌 대기업이 정부보다 훨씬 뛰어난 분석 능력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 물론 정부가 내놓는 경기 부양책 등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예컨대 정부가 자동차를 살 때 물리는 개별소비세를 깎아 주면, 자동차 판매나 내수 활성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다만, 정부 각 부처의 정책을 한 해에 두 번 모두 모아 경제정책방향이라고 대대적으로 발표할 필요성은 줄어든 것 같다는 뜻이다. 정부의 정책 발표는 선진국처럼 필요할 때 하면 된다.

정부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할 때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점도 경제정책방향의 효용성을 떨어뜨린다. 예컨대 오는 7월 초 올해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할 계획인 기획재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얼마나 낮출지에 대해 고민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9일 취임 2주년 대담에서 “(연간 성장률) 목표는 적어도 2.5∼2.6% 정도로 앞으로 더 만회해 나가야 한다”고 발언한 것이 일종의 가이드라인(지침)처럼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경제 전망치가 빗나갈 때마다 “정부가 발표하는 것은 단순한 전망치가 아니라 의지를 담은 목표치”라고 주장하지만, 결국 전망이 틀린 것에 대한 변명(辯明)에 불과하다. 전 세계 선진국 중에서 한 해에 두 번이나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는 나라는 찾기 어렵다. 이번 기회에 공무원들이 대통령에게 일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만든다는 얘기도 나오는 경제정책방향의 존폐에 대해 진지하게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haed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