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황성준 논설위원

中 “항미원조는 정의로운 전쟁”
한국은 총력전, 미국은 제한전
전쟁은 무기보다 의지가 좌우

이미지 크게보기

“전우여, 우리의 싸움은 헛되지 않았다.” 6·25전쟁 발발 69주년을 맞아 24일 국립서울현충원에 참배한 미국 참전용사들은 한국의 발전된 모습에 감격하며 이렇게 말했다.

‘알지 못하는 나라,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지켜달라’는 부름을 받고 전투에 뛰어들었던 이들은 전우의 죽음, 그리고 자신들이 겪은 부상과 고통의 의미를 당시엔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번영한 대한민국을 보면서, 한때 ‘잊힌’ 아니 ‘잊고 싶은’ 전쟁이었던 6·25가 ‘자유수호전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유사한 이야기를 한 터키군 참전 상이용사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이 노병은 “정말 고맙다. 너희가 잘살게 돼서. 만약 너희가 그때처럼 계속 굶주림 속에 있었다면 나는 내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며 울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6·25의 의미는 북한에서 전혀 다르게 해석되고 있다. 북한 김정은은 지난 21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평양에 위치한 조중우의탑(朝中友誼塔)을 방문해 “조선(북한)이 침략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중국 인민지원군이 치른 용감한 희생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6·25 남침에 대해 반성·사과하기는커녕, 적반하장격으로 자신들이 침략을 당한 양 주장한 것이다. 문제는 북한만이 아니다. 이 발언에 대해 시진핑 주석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6·25에 대한 시진핑의 입장은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시진핑은 부주석 시절이던 2010년 “위대한 항미원조전쟁은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었다”고 규정했다. 그리고 2017년 7월 중국 인민해방군 건군 90주년 행사에서 “항미원조전쟁과 여러 차례 변경의 자위 작전을 승리로 이끌어 국위(國威)와 군위(軍威)를 떨쳤다”고 말했다.

중국은 6·25전쟁 명칭을 ‘조선전쟁’과 ‘항미원조전쟁’ 두 단계로 구분해 사용하고 있다. 1950년 6월 25일 시작된 조선전쟁은 내전이었는데, 미국이 무단 개입했으며 급기야 38선을 넘어 북한을 침공함으로써 10월 25일 항미원조전쟁으로 발전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전인 이상 누가 먼저 총을 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중국의 입장이다. 그러나 남침이냐 북침이냐가 중요하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북한이 굳이 북침을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북한은 ‘조국해방전쟁’이라는 자신들의 공식 명칭과 걸맞지 않게 북침론을 끊임없이 주장해 왔다. 이는 6·25 발발로 발생한 희생과 피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국토 분단은 1945년 미국과 소련에 의해 38선이 그어지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1948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정치 분단도 확고해졌다. 그러나 쉽게 화해할 수 없는 민족 분단이 이뤄진 것은 피로 얼룩진 6·25 때문이다.

미국의 ‘한국전쟁’은 제한전(limited war)이었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1951년 4월 유엔군 총사령관에서 해임된 것은 해리 트루먼 미 행정부의 노선에 반대하고 총력전(total war)을 전개하려 했기 때문이다. 중국도 제5차 전역(1951년 4월 22일∼5월 10일)이 실패한 이후에는 38선 부근 전선에서 정전(停戰)한다는 입장을 굳히게 된다. 그러나 한국의 ‘6·25전쟁’은 사생결단(死生決斷)의 총력전이었다. 그렇기에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을 반대하고 끝까지 싸우려 했으나, 당시 한국은 이를 뒷받침할 군사력도 경제력도 없었다. 이에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조건으로 휴전에 동의하게 된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이 주한미군을 인계철선으로 묶어두려고 애쓴 것도 한국에서의 전쟁을 제한전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미국으로부터 가능한 한 총력전에 가까운 헌신을 얻어내고자 함이었다.

새삼 6·25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6월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 한반도 정세를 살펴보면 6·25 당시 대결구도가 재현되고 있다. 미·중 대결구도가 형성되면서, 제2의 항미원조 기치가 내걸리고 있다. 북한 핵실험 이후 중단됐던 중국 정상의 북한 방문도 최근 이뤄졌다. 러시아도 과거 6·25 당시 그러했던 것처럼, 북·중의 후방 기지로서, 그리고 유럽에 ‘제2전선’을 형성시켜 미국의 힘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전쟁사가들은 6·25 초기 미군이 패전한 것은 북한군을 얕봤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전쟁은 결국 ‘의지의 대결’이다. 첨단무기만으론 이길 수 없다. 이는 6·25전쟁과 베트남전을 통해 잘 입증됐다. 디지털화된 미군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원시적 급조폭발물(IED)에 고전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한국군 지휘부는 ‘기술군(軍) 중심주의’ 자만에 빠져 있는 듯하다. 기술 만능주의의 한계는 이번 북한 어선의 삼척항 접안 사건에서도 잘 드러났다. 삶의 방식을 둘러싼 총력전으로서의 6·25는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