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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화웨이戰은 미·중 新패권 전쟁
양측 타협 어려워 지속 불가피
한국이 최대 격전장으로 부상

청와대는 기업에 책임 넘기고
중국은 ‘옳은 판단’ 文정부 압박
굴복하면 경제·안보·동맹 잃어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를 둘러싼 미·중 신냉전이 날로 거세지고 있다. 미·중 화웨이 충돌은 무역전쟁 와중에 발생했지만, 정보통신기술(ICT)이 4세대(G) LTE에서 5세대로 도약하는 길목에서 벌어진 하이테크 패권 전쟁 성격이 강해 어정쩡한 중간 타협이 어려운 상태다. 미국의 반중(反中) 여론은 날로 거세지고 있다. 국방부와 의회가 중국을 미국에 도전하는 ‘수정주의 세력’으로 규정했고, 학계에서도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샤프 파워’로 경계하기 시작했다. 스탠퍼드대 ‘중국 영향력과 미국의 국익’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지난 3월 발표된 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중 수교 후 중국은 미국의 대중관여정책을 악용해 공산당 집권 강화 쪽으로 영향력 확대를 꾀했다. 중국의 자유화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보면서 “건설적 감시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처럼 미국의 전반적 분위기는 1950년대 매카시즘의 재연 우려마저 나올 정도로 심각하다. 따라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2020 대선 승패와 관계없이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 또한 헌법 개정으로 주석 임기를 없애고 시진핑(習近平) 1인 체제가 출범한 만큼 물러설 수 없는 구조다. 그럴 경우 정권의 정당성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미·중이 장기 패권전쟁에 돌입하면서 한국은 그 전초전 격인 화웨이 갈등의 최대 전쟁터가 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5G 핵심 ICT 회사가 있는 데다, 지정학적으로도 미·중 충돌의 요충지다. 그런 만큼 화웨이 대응을 위해선 미·중 패권전의 본질부터 이해해야 한다. 국제정치학자들이 위기 대응 문제 때 자주 인용하는 중동의 베두인 족장 일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칠면조를 도둑맞고도 가만히 있으면 낙타를 잃고 나중엔 딸까지 겁탈당하게 된다는 게 이 얘기의 핵심이다. 적에게 한번 약점을 보이고 양보하면 점점 더 큰 것을 내줘야 하고, 급기야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베두인 족장 전설을 들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강경 대응을 평가했다. 안병진 경희대 교수도 ‘예정된 위기’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쿠바 미사일 위기 극복을 이 틀로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의 화웨이에 대한 대응을 베두인 족장 일화에 대입하면, 지금은 견딜 만해도 결국 엄청난 국익 훼손으로 갈 공산이 크다. 문 정부는 지난해 가을 5G 장비 선정 때 제기된 화웨이의 보안 취약성에 대해 ‘기업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방관했다. 이후 미·중 무역 전쟁이 화웨이로 전이되며 LG유플러스 등의 화웨이 장비 도입이 논란이 됐을 때도 문제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난 7일 “화웨이 장비가 쓰이는 5G는 군사안보 통신망과 확실히 분리돼 있다”고 자신하면서 “한·미 군사 안보 분야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가 “5G 보안 측면에서 신뢰할 만한 공급자를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며 거듭 화웨이 배제를 요구한 데 대해서도 ‘안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계속 사용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런 대응은 2년 전 사드 사태의 복사판이다. 문 정부는 “경제적 타격을 감수하더라도 안보는 타협할 수 없다”고 단호한 입장을 견지했어야 했다. 그러나 일단 충돌을 피하고 보자는 식으로 버티다가 안보 주권에 해당하는 ‘3불 합의’까지 내주고도 경제 보복을 풀지 못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호랑이의 거짓말에 넘어간 셈이다. 화웨이 대응도 비슷하다. 기업에 결정을 떠넘기곤 상황을 버텨보겠다며 우물쭈물하는 태도를 보이자 중국 측은 더 세게 나왔다. 중국 외교부 당국자는 “한국이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한다”며 겁박했고, 결국 주중대사 출신 비서실장이 있는 청와대는 화웨이에 문제없다는 면죄부까지 준 셈이다. 그러자 추궈훙(邱國洪) 주한 중국대사는 자유한국당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면담 때 “한국이 5G 이동통신과 관련해 기업에 제한을 두지 않은 것을 높이 평가한다”며 여유를 보였다.

사드는 북한의 핵 도발 고도화에 따른 한·미 동맹 차원의 대응인 반면, 화웨이를 둘러싼 미·중 신냉전은 글로벌 수준에서 진행되는 전략 경쟁의 시작이다. 일본과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은 단호하게 안보 우선 원칙을 밝혔다. 문 정부의 대중 투항식 접근으로는 경제도 잃고 동맹도 잃고 안보도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