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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필리핀의 해안가에 밀려온 15m 크기 고래 사체의 입에서 플라스틱 쓰레기가 한가득 쏟아져 나온 외신 사진을 봤을 겁니다.

국내에서도 상영된 동물학자이자 영화감독인 데이비드 애튼버러의 다큐멘터리 ‘블루 플래닛Ⅱ’에선 어미 앨버트로스가 작은 플라스틱 조각을 먹이로 착각해 새끼에게 먹이는 장면이 우리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세계 대양(大洋)의 플라스틱 오염은 바다 생태계를 위협하는 수준을 넘어섰고, 이대로 간다면 2050년의 우리 후손은 바다에 존재하는 플라스틱 양이 물고기 전부를 합친 것보다 많아지는 세상에 살게 될 거라는 끔찍한 전망이 나옵니다.

그린피스 영국사무소 해양캠페인 총괄을 맡아 플라스틱 반대운동(#플라스틱제로)에 앞장서고 있는 윌 맥컬럼이 쓴 ‘플라스틱 없는 삶’(북하이브)은 이 같은 실태를 알리고 우리 자신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구체적인 실천법을 담고 있습니다.

환자가 이용하는 빨대나 상수도 시설이 낙후된 지역의 주민에게 필요한 페트병 등 합리적인 이유로 사용되는 플라스틱까지 저자가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여태껏 그래 온 것처럼, 이러한 여건을 핑계 삼아 정부와 기업이 대안을 찾기 위한 행동과 혁신을 결코 미뤄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플라스틱은 대부분 일회용 플라스틱입니다. 바다 오염의 주범이기도 하지만, 개인과 가정·지역사회가 나선다면 해결할 수 있는 플라스틱 문제의 전형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편리함을 명목으로 짧은 시간에 소비하고 버리는, ‘생산-소비-폐기’의 소비문화 선형 시스템이 그 근간입니다.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해서는 ‘줄이고-다시 쓰고-재활용’하는 순환 시스템으로 바꿔야 하는데, 이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뜻이 모여야 시작할 수 있습니다.

페트병이나 각종 플라스틱 용기·포장을 줄이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울지 모릅니다. 의류가 해양 플라스틱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또 해양 생태계에 큰 위협이 된다는 사실은 잘 모를 겁니다. 옷을 세탁기에 돌릴 때마다 머리카락보다 가는 나일론이나 폴리에스테르 실이 빠져나오는데, 이 미세 플라스틱이 바다로 유입되는 플라스틱 전체 양의 3분의 1까지 차지합니다. 이 같은 마이크로파이버는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인 크릴과 같은 동물성 플랑크톤이 먹어 더 큰 어류와 고래까지 병들게 하고, 결국 우리의 식탁에까지 올라오게 됩니다. 세안제, 샤워젤, 화장품, 치약 등에 연마제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플라스틱 알갱이인 마이크로비즈 역시 바다 플랑크톤이 먹게 됩니다. 책은 가정의 욕실과 침실, 주방에서, 직장에서, 지역사회에서 무엇을 시작해야 할지를 들려줍니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