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받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잘된 번역’이라는 평이 많습니다. 20여 년간 한국 영화를 깊이 판 미국인 평론가 달시 파켓이 한국적 정서를 정확히 꿰뚫으며 의역한 덕분이죠.

그가 ‘기생충’에 영어 자막을 달 때 가장 큰 걸림돌은 ‘반지하’였습니다. 이 영화와 주인공들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인 공간인데, 그 뉘앙스를 적절히 담을 영단어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죠. 결국 파켓은 ‘세미 베이스먼트(semi basement)’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반지하에 사는 이가 거의 없는 영미권 관객들에게 이 생소한 단어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가져왔죠.

한국 사회에서 반지하가 주는 메시지는 명징합니다. ‘가난’이죠. 이미 개봉된 영화 속 반지하를 살펴볼까요.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2010)에서 주인공 남녀는 허름한 빌라의 마주 보는 반지하 집에 살죠. 허접한 건달과 배고픈 취업준비생은 이 어둡고 음침한 공간에서 사랑을 나눕니다.

‘건축학개론’(2012)에도 반지하가 등장하죠. 승민은 서연을 좋아하지만 고백도 못 하는 숙맥입니다. 그는 부자여서 자가용까지 몰고 다니는 학교 선배 재욱과 서연의 반지하 방으로 함께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흐느껴 울기만 하죠. 이렇듯 반지하는 영화 속에서 누군가의 아픔이자 슬픔을 대변하기 위한 메타포가 되곤 합니다.

봉 감독은 대한민국에서 지하라는 공간을 가장 잘, 그리고 자주 그리는 감독입니다. 그의 장편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에서 경비원이 훔친 개를 잡아먹으려는 공간이 지하실이죠. ‘살인의 추억’에서는 공권력이라는 미명 아래 형사들이 고문을 일삼던 곳, 그리고 ‘괴물’에서는 괴물이 납치한 여자아이를 가둬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공간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자녀와 함께 ‘기생충’을 본 후 “불편했다”는 관객도 적지 않습니다. 극명한 빈부 격차가 피부로 느껴지고, 삶의 무게와 매일 싸우는 부모 세대들에게 ‘기생충’은 영화라기보다는 현실이었던 탓이죠.

그러나 반지하를 우울하게만 바라볼 필요는 없습니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속 덕선은 동갑내기 친구네 집의 반지하 방에 얹혀살지만 구김이 없죠. 그의 언니 보라는 서울대에 다닙니다. 교육으로 가난을 극복하던 시절, 반지하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해가는 원동력이 됐죠.

또한, 학창 시절 지하실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는 봉 감독에게 지하실은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는 창작의 공간이었던 셈입니다. 이쯤 되니 떠오르는 오랜 명문이 있네요. 가난은 죄가 아닙니다. 단지 조금 불편할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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