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일괄 수주가 당연시됐던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에 대한 장기 정비 계약(LTMA)이 꼬이고 있다. 원전 운영사인 나와(Nawah)가 10∼15년으로 잡은 LTMA 기간을 3∼5년으로 쪼개고, 정비 분야도 나눠 한국·미국·영국 등 3개 입찰 참여사에 배분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다음 달 이런 식으로 확정되면 한국의 수주 금액은 당초 최대 3조 원에서 수천억 원대로 줄어들 수 있다.

바라카 원전은 한국수력원자력이 1.4GW급 한국형 차세대 원전 APR-1400 4기를 짓는 사업이다. 미국·유럽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은 원전으로 건설하는 만큼 LTMA도 수의계약 형태로 수주하는 것은 기정사실로 여겨졌다. 한국전력이 2016년 UAE 원자력공사와 합작해 나와를 설립할 때도 60년 간 한국이 유지·보수 등 운영업무를 맡기로 했다. 실제로 그해 한수원은 1조 원 규모의 운영지원계약(OSSA)도 따냈다. 그러나 2017년 UAE 측이 LTMA를 돌연 입찰 방식으로 바꾸면서 미·영 업체가 끼어들었다. 급기야 지난해 11월에는 장기서비스계약(LTSA)이 프랑스전력공사로 넘어갔다. 한국의 독점권 행사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정부 쪽에선 UAE 측이 주도권 확보 차원에서 한국 몰아주기에 제동을 거는 식으로 설명하지만, 변명일 뿐이다. UAE로선 바라카 원전이 전력의 25%를 점하는 핵심 시설인데,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장기 운영 능력에 불안감을 갖는 건 당연하다. 지난해 7월에는 도시바가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 사업권을 가진 뉴젠 매각과 관련, 한전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해지했다. 당시 새 정부 출범 등을 불확실성으로 꼽은 영국 언론 보도는 괜한 게 아닐 것이다. 탈원전과 수출을 병행한다는 주장도 자가당착임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번에 일괄 수주에 실패하면, 문 정부는 심각한 국익 훼손에 대한 정치적 책임은 말할 것도 없고, 직무유기나 배임 등 민·형사상 혐의까지 엄정히 책임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