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권이 입법과 행정에서 분리되지 않으면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몽테스키외가 ‘법의 정신’에서 밝힌 이 원칙은 민주헌법의 기본원리로 정착됐다. 대한민국 사법부도 지난 70년 영욕이 교차했지만 한 걸음씩 그 방향으로 발전시켜 왔다. 문재인 정권이 전임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행정권 남용을 사법 적폐로 몰아 대대적 단죄 캠페인을 벌이는 명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문 정권과 현 김명수 사법부 체제에서 정면으로 역행하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청와대는 김형연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법무비서관 후임으로 부장판사 출신인 김영식 변호사를 임명했다. 김 전 비서관은 인천지법 부장판사로 재직하던 중 2017년 5월 현 정권 출범 직후에 사표를 냈고, 이틀 만에 청와대로 직행해 사법 독립 훼손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민주주의 원칙에 대한 존중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같은 일탈을 반복하지 않는 게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그런데 후임인 김 비서관도 같은 법원에 재직하다가 지난 2월 25일 사직하고 3개월 가량 로펌에 몸 담았다가 청와대로 갔다. 이틀이 3개월로 ‘물타기’ 됐을 뿐 청와대 직행이라는 본질은 마찬가지다.

법무비서관은 사법부 고위직 인사 업무도 담당한다. 이런 자리를 특정 성향의 판사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간사를 지낸 ‘코드 판사’가 연달아 맡은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김 비서관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 독립을 강하게 주장했고, 지난해 12월 내정설 보도에 “오보이며 연구회 전체를 폄훼하려는 의도”라고 반발했었다. 사법 독립에 먹칠한 것은 물론 황당한 이중 행태에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법관 내부망인 코트넷에 “남이 하면 사법부 독립 침해, 내가 하면 정의냐” “석 달 구색 갖췄으니 문제없다 하실 건가요. 어이상실” 등 위선(僞善)에 일침을 가하는 글들이 올라왔다고 한다. 당연한 평가다. 원칙의 잣대로 볼 때, 이런 권·법 유착 고리는 사법행정권 남용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다.